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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 기억의 강에 떠오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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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 기억의 강에 떠오르는 것들
  • 임화자 수필가
  • 승인 2021.07.18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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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교실 수필3회 추천 완료. (한국문예)수필추천 등단(1982)(문학과 비평) 단편소설 등단(2019)한국수필가 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경기여류문학회 고문경기한국수필가 협회 본상. 경기예술인상. 백봉문학상수필집 외 공저다수
새교실 수필3회 추천 완료. (한국문예)수필추천 등단(1982)(문학과 비평) 단편소설 등단(2019)한국수필가 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경기여류문학회 고문경기한국수필가 협회 본상. 경기예술인상. 백봉문학상수필집 외 공저다수

수원에서 나서 80여 년을 살았다. 세 살 때 해방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 오래된 신풍 초등학교에 다녔다. 지금은 광교 신도시로 이전되어 좀 아쉽지만 그 당시에는 수원의 자랑이었다. 그리고 세류초등학교와 매산초등학교가 있었다. 매산 초등학교는 일본 아이들이 다니던 곳이라 학교도 일본식 구조로 되어 있었다. 세 학교가 운동 시합을 할 때는 주로 세류초등학교에서 하고 응원도 많이 따라가서 했다. 학교 별명이 있다. 신풍 초등은 ‘신발짝’ 매산 초등은 ‘맹꽁이‘ 세류 초등은 ’쇠똥벌레’ 로 응원할 때는 서로 학교 별명을 부르며 소리를 쳤다.

봄에 팔달산에 진달래가 어우러져 필 때면 산에 올라가 진달래 꽃잎을 입이 빨갛게 물들 정도로 따 먹고, 올 때는 약수터에 들러 시원한 약수를 마시며 조잘대고 놀았다. 지금처럼 간식이 풍부하지 않은 때라 이렇듯 자연 속에서 먹을 것을 찾았지만 그래도 재미있고 행복했다.

오목천동 외딴집에서 부모님이 양계, 젖소, 돼지 등을 기르고, 복숭아 과수원을 하셨는데, 학교가 없어 팔달로에 사시는 큰 집에서 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원으로 유학을 온 셈이다. 어려서 부모님을 떨어져 살아서 해가 뉘엿뉘엿 질 때면 집이 그리워 뒤란 굴뚝 밑에 숨어서 훌쩍훌쩍 울 때가 많았다. 지금도 해질 때가 되면 마음이 서글퍼진다. 우리 동네서 조금 가면 아흔아홉 칸짜리 ‘양승관’님이 사는 부잣집이 있다. 우리는 마당이 넓은 그 집 뜰에서 숨바꼭질도 하고 소꿉장난을 많이 했다. 그렇게 놀아도 그분을 한 번도 본 적은 없는데 그 집 뜰이 많이 헐어 있어 지금 생각하니 집안 가세가 많이 기울어졌을 때였던 것 같다. 그러니 우리들이 들어가서 놀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 집이 지금은 민속촌에 그대로 옮겨져 있어, 민속촌에 가면 어릴 때 생각이 떠오른다.

내가 2학년 때 6.25 전쟁이 터졌고 우리는 피난을 가야 했다. 휴전이 되어 돌아오니 학교는 많이 부서져 있어 공부할 장소가 없었다. 그래서 옆에 있는 화령전에서 가마 짝을 깔고 책상은 식당 노점에서 보는 긴 나무 의자에 쭉 늘어앉아 공부를 하였다. 성곽과 사대문도 많이 부서져 있었다. 그런 열악한 곳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우리는 죽지 않고 살아서 만났다는 것이 너무 반가워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3학년 때 영화동 허허벌판에 피난민 아이들이 다니는 종합초등학교가 생겼다. 피난 온 아이들과 고아원 아이들이 많아, 적령 이상의 아이들이 많은 관계로 아이들이 크고 좀 거칠었다. 종합 학교가 생긴 후로는 학교별 축구 경기를 하면 모두를 휩쓸어 상을 타갔다. 휴전이 끝나고 아이들이 서울로 거의 돌아간 후에, 학교 명칭이 영화초등학교로 바뀌고 학교 분위기도 많이 변했다.

산도 나무도 거의 다 베어 땔감으로 써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도 우리는 민둥산이 된 광교산으로 사방공사 하러 다녔다. 풀씨 뿌리고, 송충이 잡으러 다니며, 땔감으로 솔방울을 주우려 다닐 때가 많았다. 학원이 없었기에 6학년 때는 학교에서 과외 공부를 하여 도시락을 두 개씩 가지고 다녔다. 수도시설이 없었지만 물이 깨끗하여 집집이 우물이 있어 두레박으로 물을 먹었다. 아이들은 맑고 깨끗한 수원천에서 미역을 감고 물장난을 하였다. 수원 천가에는 아낙들의 빨래터가 되어 아침 먹고는 빨래들을 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특히 영화동에 우시장이 있어 5일 장이 서는 날이면 소를 끌고 각지에서 모여와 시끌벅적하였다.

중학교 때에는 등교 시간만 되면 고등동 길에는 농고 학생들과 수여고 학생들이 서로 마주 걸어가기 때문에 오가는 길이 꽉 찼다. 그것도 잊을 수 없는 그림이다.

오가면서 가끔 사랑이 싹트는 아이들도 있어 심심찮게 입소문으로 우리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기도 했다. 우리의 소풍지는, 서호, 광교, 원천, 고학년은 용주사까지 걸어서 다녔다. 그렇게 이곳저곳 추억이 담아있어 눈 감으면 한 눈에 그릴 수 있던 곳이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지만 오랫동안 지나며 마주쳤기에, 낯익은 얼굴들을 보며 말은 안 해도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했다. 지금은 너무도 많이 변한 도시라 이제 찾아가기도 어렵게 되었다.

그래도 내 고장 수원은 정다운 곳이다. 내 부모님이 뼈를 묻으시고, 내가 뼈를 묻을 곳이기 때문이다. 수원 성곽을 끼고 늘 다니고, 생활하던 곳이라 문명의 변화로 많은 것이 변하고 있지만, 오랜 세월 마음속에 새겨진 추억은 변하지 않고 기억의 강에 종이배 되어 떠다닌다.

이서등/캘리화가
이서등/캘리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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