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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 지인을 통해 느껴보는 소소한 생각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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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 지인을 통해 느껴보는 소소한 생각 읽기
  • 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 승인 2021.07.06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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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장
정명희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장

저녁 상현달이 이지러지고 있는 시각 집으로 향하는 길은 고즈넉하지만 편안하다.

잠시 전 사무실 정리를 하고 온 기분이 그런대로 안정적이어서 그러하리라. 사람의 감정은 변화무쌍하다. 겉으로는 평안하고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듯 보인다. 그러나 내면에서는 울근불근 여러 가지 사건과 뜻하지 않은 일에 대한 각종 사념이 들끓을 때가 많다. 언제부턴가 그런 사람들의 내면을 잘 읽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습관 때문인지 오로지 반듯하고 원칙적인 일에만 시선이 가 있어 상담자격증을 가지고서도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고 공감하는 데는 송방이다. 마치 어린아이 같은 수준밖에 안 된다. 들으려고 해도 잘 안 들리는 마음의 장애를 갖고 있다는 생각을 요즈음 들어 부쩍 해 본다. 그 생각을 하면 소름이 끼친다. 어리석은 자신임을 나이가 든 요즈음에야 깨닫고 있다니 내 자신이 무척 한심하다는 생각도 한다. 주위에 내 말을 잘 들어 주는 열 살이나 아래인 지인이 있다. 그녀에게 어리광처럼 이 말 저 말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볼 때가 있는데 이 또한 신기한 일이다.

창피한 심정에 모자란 내 자신을 돌아보며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아내려고 참 많이 애를 썼다. 그녀는 지식이 별반 많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두드러지게 무언가를 잘 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를 만나든 편안하게 대화를 하고 주변을 행복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런 그녀를 만난 것이 나에게는 자랑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

해가 갈수록 친근해져서 아예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게 되었다. 참 특별한 인연이다. 그런 그녀를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 게 되었다. 그녀는 열악한 가정환경으로 인한 아픔이 많은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녀는 그런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마음 수련을 많이 했다. 사람들은 곤란을 겪을 때 두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자포자기로 인한 사회에 대한 증오적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 상황을 인지하고 최선을 다해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후자였을까. 힘든 상황을 극복하면서 저절로 터득하게 된 인간사를 이해한 것 같다.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희노애락 측면에서도 보면 다 같은 것 같다. 분명히 나이를 많이 먹은 내가 그녀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응석을 부리고 사회에 대한 불평을 하고 사람에 대한 막말을 하는데도 그녀는 공감의 천사가 되어 고개를 끄덕거리며 화답을 해 준다. 한 번도 그녀의 행동에서 거부반응이나 모멸감을 느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나 역시 그녀의 환경을 무시하거나 경멸해 본적도 없다. 단지 그녀는 그녀다. 내가 보고 싶을 때 내가 만나고 싶을 때 그녀는 언제나 내 곁에 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한 그녀는 내 곁에 나의 지지자가 되어 있다. 그런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인 것 같다. 오늘 나는 내 아비의 이야기를 그녀에게 했다. 구순이 되신 나의 아비는 깔끔하고 정직하며 성정이 분명하지만 사업의 실패자셨다. 평생 나의 어미와 우리를 위해 번듯하게 물질적 성공을 거두고 싶어 하셨지만 수많은 사업에 실패하셨다. 구두공장에 운수업에 산판사업에 재봉틀공장까지 이러저러한 사업들은 우리 가정에 장애가 되기도 했다, 그 덕분에 경제적 고통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 아비가 놓지 않은 것은 아비의 정신을 굳건하게 지켜주는 예술세계였다. 아비가 공직에서 정년퇴직을 하신 어느 날 아비의 손에는 붓이 들려 있었다. 아마도 환갑이 넘은 시점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 삼십 여년을 아비는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서예를 하고 있다. 이제 구순이 되신 아비는 돌아가실 자리를 손수 만들었다. 봉분을 세우고 비석을 세웠는데 그 비석의 글자 속에는 시인 아무개란 표지명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막내 동생이 찍은 사진에 비쳐진 아비는 등 굽은 모습으로 껍질만 남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봉분아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이 짠하게 비쳐졌다. 저절로 마음이 후르륵 내려앉으며 어디선가 세찬 회초리가 내 마음을 슬프게 후려치는 듯 했다.

자랑스러운 내 아비인데 왜 저렇게 변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아비는 표지석의 뒷면에 사남매의 이름과 그의 아이들 이름을 새겨 넣었다. 아비의 표정에는 세월에 대한 한스러움과 숙명에 대한 순응의 표정도 함께 있었다. 동생들이 아비의 구순을 모여서 하자고 했을 때 정신없는 나는 협회의 일로 갈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마음이 무너질 듯 내려앉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뵈올 시간을 상상하고만 있었다. 구순 잔치가 끝나고 동생이 보내 준 사진 속의 아비는 아비의 산소를 손수 만드실 때의 모습과는 딴 판으로 생기가 철철 넘치고 있었다. 아비는 자식들로 인해 옛 일들을 잊으셨을까. 유추해 보기에 아비는 이제 홀가분한 마감을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하루 쯤 지난 후 어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냥 네 목소리가 듣고 싶다고. 아프지는 않느냐고. 잘 있으면 됐다고. 내 아비와 어미가 준 삶의 표상과 내 지인의 삶을 비교해 보면 공통분모가 분명 있다. 모든 세상의 삶은 어디 어느 곳에서 어떤 삶이든 다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할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이제 나도 옹졸하고 어리석은 마음의 벽을 허물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심안이 생겨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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