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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 여름이 온 자리에 삶은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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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 여름이 온 자리에 삶은 푸르다
  • 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 승인 2021.06.06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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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장
정명희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장

얼마 전 방송국에서 인터뷰 자료를 찾으러 왔다. 수원의 여류작가에 대한 삶을 조명해 보고 싶다며 말문을 열었는데 평소 생각해 오던 일부를 아무 생각 없이 표현했더니 고개를 흔든다.

예술과 삶의 자취는 별개라고 하며 어느 쪽에 포커스를 맞추느냐가 관건이란다. 인터뷰 하기쉬운 것은 아마도 논의거리가 많은 것보다는 집중할 수 있는 이슈 몇 가지로 정하는 것이 나으리라. 그 기자들은 사십대 초반의 가정을 가진 취재기자와 사진기자들이었는데 생각의 관점이 뚜렷하다. 한참동안 각자의 생각을 말하며 우회하다가 본론에 들어가서는 알고 있는 자료들을 조목조목 나열하고 정리해서 알려 줬더니 흡족해 한다. 취재의 명분과 개인의 사견은 분명하게 별도로 나누어져야 하리라. 그러면 그 여류작가는 왜 일상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과 도발을 강하게 어필했을까. 그 부분에 대해서 한동안 생각했는데 얼마쯤 시간이 지나니 저절로 해석이 되었다. 바로 정신분석학적인 접근과 심리학적인 접근의 측면에서 그 실마리가 풀어진다. 그녀는 사춘기 시절 아버지의 외도를 알게 되었고 힘들고 괴로워하는 어머니의 나약한 모습에서 자기만의 갈 길을 찾은 것이 아니었을까 유추할 수 있었다. 뭇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수 없는 질타를 받으면서도 ‘조선 여인들이여 깨어나라!’고 외친 그녀의 항변 속에는 많은 뜻이 담겨져 있다. 그녀는 거침없는 평등과 자유 누구의 속박도 받지 않겠다는 강한 자존감의 표출이며 망가지지 않겠다는 강열한 자기만의 방어기재를 활용한 것이리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악한 환경과 의도치 않은 상황의 전개 속에서 평정심을 잃고 방황한다. 지식인들은 더욱 혼란스러운 것이 의식주보다는 가치지향적인 부분에서 삶의 명분을 찾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는 쉬운 일이고 어느 누구에게는 어려운 일이리라. 생각은 꼬리를 물고 내 안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또아리를 틀고 정지해 있다. 어떤 계기에서만 전광석화와 같이 빠져나와 겨루기를 한다. 그러한 상상은 도전의 화신인가 아니면 파괴의 원천인가. 우문일지 모르지만 이 또한 벌어지는 상황의 변곡점에서 그 진가를 기어이 찾아가고야 만다는 것이다. 어느 문인에게 글은 어떻게 쓰느냐고 했더니 궁둥이가 답이라고 했다. 얼마나 많이 앉아서 글 쓰는데 시간을 할애하느냐에 따라 그 답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뜨끔했다. 그것은 게으르고 변명 투성이이며 회피본능에 충실한 자신을 너무나 정확히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글을 쓴다는 것은 좋은 것만이 아니라는 답을 알고 난 뒤부터는 글을 쓸 때마다 머리가 복잡하고 깨질 것 같이 아픈 경험을 수 없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작가정신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얼굴이 공연히 붉어져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다. 문장 실력만 가지고 ‘겨루는 것이 아닌 게으른 자의 구차한 변명 속에서 얼마나 많은 세월을 좀먹었는가’ 하는 자책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습관에 의해 초심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곤혹스러운 경험들에 대해 일부는 비워보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를 보호하려는 일종의 부정적이지만 방어기제를 활용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어떨 때는 잠시 잠깐 그 약발이 통할 때가 있다.

시간이 얼마간 지난 후 그 기자들이 소식도 없이 사무실을 방문했다.

약간의 호기심이 생겨 오늘은 어떤 일로 왔을까 궁금해 하면서 바쁜 시간 중에도 따라 나섰다. 그 유명한 인계동 나혜석거리를 가자는 것이다. 일단 가서 살펴보자는 생각이었고 다른 사람 인터뷰라 지켜보는 재미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따라갔다.

여름은 실로 가까이 있었다. 초여름의 신록은 눈부시다 못해 시원한 청량제와 같이 무성하게 거리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잎새들은 부채처럼 활짝 핀 손바닥으로 여기 저기 신록을 뿌려대며 힘찬 발걸음을 내 딛는 듯 했다. 저절로 ‘아, 시원해’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였다. 팔순이 훌쩍 넘어선 건장한 기념사업회 대표님께서 활짝 웃으며 여유로운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한참을 인터뷰 장면을 바라보다 나혜석 관련 시도 읊어보고 나혜석 자작시도 찾아 메모를 하며 시간을 기다리고 사진 몇 장을 찍기도 했다. 기자들은 바쁜지 미협방문 일정이 잡혔다며 다음 시간을 약속했다. 인사를 간단히 하고 무심코 차로 돌아와 한참을 운행하고 있는데 무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뿔싸. 벤치 위에 가방을 두고 오다니. 이미 종착지에 다다른 정도라서 삼십분이나 지나고 난 후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하다가 다시 차를 돌려 그 자리로 갔다. 멀리서 보니 가방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어두운 그림자만 덮여가고 있었다. 가지고 있던 모든 자료가 다 털린 기분으로 아찔한데 누군가 주위에 가방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게 되었다.

다행히 앉았던 맞은 편 자리에 어느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 옆에 가방이 놓여져 있는 게 아닌가. 그 순간의 감사한 마음이라니, 하늘로 치솟을 것만 같았다. 일의 종지부를 찍고 보관하고 있던 사람에게 수 없는 감사의 인사를 하며 돌아오는 마음은 천길 하늘을 뚫은 기분이었다. 순간의 기분은 마치 하늘과 땅을 오가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걱정을 하고 있는 지인들을 불러 시원한 맥주와 동동주를 거침없이 쏘아대고 늦은 시간 책상에 앉아 모처럼의 진득한 글을 쓰고 있을 수 있었다. 바로 그거야. 어느 순간 신 내린 듯 써지는 그 비결, 그것은 단 하나 실제 경험에서 온 소산과 마음의 일기예보에서 오는 폭풍우와도 같은 열정으로 인내심을 발휘하는 것. 바로 진정한 작가로 가는 길목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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