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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 행리단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는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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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 행리단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는 인연
  • 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 승인 2021.04.08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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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장
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햇살 따사로운 봄날 거리마다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이미 하얀 메시지를 남기며 허공 속으로 사라져 가는 목련의 뒤를 이어 작은 새잎들의 세상나들이는 이미 폭발적이 되어 버렸다. 간간이 바람 타고 흘러오는 라일락 꽃 향기가 발길을 멈추게 하고 긴 겨울을 견디며 강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수선화가 앙징스럽게 길가에 앉아 있다.

시간의 가속도는 계절을 이미 거슬러 올라 질주의 탐욕을 벌이는 걸까. 어디에선 벚꽃들이 바람의 손길사이에서 숨바꼭질을 하며 날개를 달고 재잘거린다. 또 어디에선가는 노란 개나리들이 다발로 담장을 넘어 지나는 행인에게 봄소식을 알린다. 산숲에선 언뜻 언뜻 분홍빛 진달래가 물기를 머금은 채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꽃모양이 고만고만해서 알아보기 힘든 조팝나무와 이팝나무도 조롱조롱 볼우물을 만들며 화사하게 웃고 있다. 거기에다가 볼그레한 박태기나무까지 꽃을 피워 조화를 이루면 가히 봄은 색깔마술의 천재라고 볼 수 있다.

기다리지 말라며 살아 날 것 같지 않던 긴 시간을 넘어 웅크렸던 마음을 추스르고 추슬러 참아 지낸 날들이 봄꽃에겐 있다. 마치 고난에 대한 보상처럼 만지면 녹아 버릴 것 같은 연약하고 앳된 모습으로 나타난 꽃잎들의 환생은 감탄을 떠나 경탄의 경지라고 느껴진다.

보도블럭 사이로 배시시 고개 내민 아기제비꽃, 햇볕의 입맞춤에 감당 못한 함홀감으로 자지러진 것만 같은 진한 노랑 빛의 민들레,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듯 솜털 보송한 할미꽃의 고개 숙임은 봄의 화첩에선 없어선 안 될 화룡점정이다.

마을 어디에선가 보았던 기억을 살려 골목길을 돌다 듬성듬성 여기저기 피어난 민들레꽃을 찾았다. 사실인즉 민들레꽃 군락을 만들고 싶어 꽃삽을 들고 나서 본건데 만만치가 않다. 꽃밭에 옮겨 심으려 하는 욕심을 눈치채고 비웃기라도 하듯 보도블럭을 다 들어내야 할 정도로 깊게 뿌리가 박혀 있다. 이사는 아무 때나 가는 게 아니라고 떠들면서 어찌 우리에게 예고도 없이 이사를 시키려 하느냐고 버티는 듯 하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한 줌의 풀꽃이라도 그 정도의 자존심은 있다고 보여주는 것 같아 슬그머니 미안해진다. 그럼 그렇지 스스로 가고 싶을 때 가는 게 이사지 강제로 살던 곳을 떠나게 하려고 끌어내고 잡아당기는 짓은 몹쓸 행위에 해당한 거다. 

그 자리에 살고 싶어 스스로 얼마나 온 정성을 드리고 드렸으랴. 그것도 짐작컨대 수년을 그 자리에서.

이 곳 수원에 행리단길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명소가 생겨났다. 시간이 갈수록 각지에서 아베크족들과 가족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옛날과 오늘이 한데 어우러진 듯한 소박한 느낌의 이곳은 해가 갈수록 정돈되고 다듬어지고 있다. 오늘도 지인들과 골목길을 돌아보는데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달라져 있음을 금세 깨닫게 된다. 낡은 모습은 낡은 대로 새로운 것은 새로운 대로 적절한 조화가 이루어지고 있어 구석구석 저마다 특색이 보인다. 

나도 무슨 연유인지 보이지 않는 인연에 끌려 이곳에 오게 되었다. 한 해하고도 두 달이 지나는 동안 밤인지 낮인지 모르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키는 집이 생겼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이제는 동네 사람들까지 얼굴을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그 분들과 은근히 정도 들은 것 같다. 이른 아침부터 손수레를 끌며 파지를 줍고 다니는 할머니께도 눈인사를 한다. 근처 식당 주인들과 담소도 하고 앞집 옆집 뒷집에 어떤 분이 사는지 눈치도 채고 있다. 연날리는 최고의 기술을 가져 전국에 불려 다닌다는 앞집 아저씨도 안다. 그 분의 직업은 건축공이다. 그 분이 새벽 낚시를 다녀왔다며 덥석 양동이 한가득 물고기를 덜어 주고 가신다. 각박한 도시에 이런 이웃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옆집 아저씨는 담장 구석에 남모르게 주목나무를 심어주셨다. 성함을 여쭈니 박사장이라고 하면 다 안단다. 모기가 있다고 하수도 뚜껑을 손수 만들어 덮어 주신고마운 분이다. 

이 소박하고 인정많은 거리에 시인들이 나섰다. 봄이 만개한 어느 날 시인들은 담장을 따라 시의 꽃을 피웠다. 「희망」이라는 시와 수원 태생의 「나혜석」 여류작가에 대한 기억을 쫓아 시의 꽃망울을 달았다. 수원의 행리단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하여.  

시인들은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우연하게 만난 인연이 끊을 수 없는 인연으로 저 민들레처럼 깊게 뿌리내릴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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