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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결정된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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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결정된 미래는 없다
  • 최윤정 한국정서교육개발원장
  • 승인 2021.03.18 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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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정 한국정서교육개발원장
최윤정 한국정서교육개발원장

인간은 앎의 주체이며, 배움의 즐거움은 오래도록 배우기를 버티는 자들의 것이고, 변화는 가치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구를 적극적으로 실천 할 때 온다. 현대인은 과거 어느 시대인들 보다 정확한 정보를 넘치도록 가지고 있고 눈높이와 표현능력이 훌륭하다. 그러나 연일 이어지는 사건사고는 직분을 망각하여 물욕에 집착하거나 감정조절 실패로 내질이 파괴된 범죄들이다. 이전 어느 시대 보다 아는 것이 많은 현대인들이 펼쳐 보이는 상황은 너무 뜻밖이지만 기다리던 일이기도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급성장은 위대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제 인간의 주체성에 대하여 굳은 결의를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배운 사람들이 왜 이러나 싶었는데 진실하고 올바른 것을 알지 못한 사람들이다. 알면서 왜 저러나 싶었는데 정신능력이 핍절된 사람들이다. 의식 없는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서 긴 시간 해오던 실망스러운 행태가 이제 꼬리가 밟히고 있다. 더 어이없는 것은 바로잡는 시간 보다 늘 빠른 것은 빠져나가는 탈출구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연극이 아니다. 등장인물 역시 배우가 아니다. 너무나 변화무상한 우리들의 길잡이들은 사익으로 무장하고 불안을 조성하여 사회적으로 극심한 갈등과 혼란을 빚게 한다. 우리 사회에서 무의미하고 무가치해진 길잡이들은 자신들이 회복하는 길이 반성과 주체성 회복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지위-자질 불일치, 교육-고용 불일치, 신앙-삶 불일치, 가치-제도 불일치, 말-행동 불일치를 보여주는 길잡이들은 그럴듯하게 공정한 ‘척’, 바로잡는 ‘척’ 다 아는 ‘척’을 한다. 그 척으로 세상은 복잡다단하다. 초등학교에서 배운다. 나는 60억 명이 넘는 인구 중 유일한 사람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때문에 소중한 존재이며 서로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며 관계를 맺으며 건강한 사회를 이루라고 배운다. 이 사회에 배운 것이 통하고 있나? 우리는 무인도에 사는 것도 아닌데 소통을 경계하고 결국 각자가 섬이 되어 살고 있다. 이해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동료는 언제든 힐난의 대상으로 추락하게 되고, 견제가 필요한 관계는 깊은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그들만의 리그로 이득을 취하고 있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고 부패된 곳을 정화하는데 삶의 정열을 쏟아내면 존경을 받는 것이 그저 책장에 꽂아져 있는 진리에 불과하다면 과감하게 가치관을 바꾸고 정신활동을 멈추고 일찌감치 자신을 망각하고 사익을 취하는데 중독된 길잡이들과 똑같아지려고 노력하면 된다. 약육강식의 사회가 아닌 진정한 사회가 되려는 노력은 결과적으로 하는 척만 한 것이다. 공정하지 않은 사회는 실망감과 무력감에 질서가 무너지고 개인은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삶의 가치, 이상, 정체성을 부여잡고 살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청년들은 지금의 길잡이 들이 할 수 없었던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것에 전심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모두를 인간답게 살게 하는 것이다.

‘라떼는 말이야’는 20대 때 앞장서 투쟁 했었다. 30대 때 근면성실의 상징이었다. 40대 때 누구보다 청렴했었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는 투기에 걸릴까 부정채용에 걸릴까 성추행 등 부패 앞에 나약하고 비열한 모습이 졸렬해 보이고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벌을 받는 것은 힘겨루기에서 졌기 때문이라고 뻔뻔하게 마지막까지도 파렴치한  모습은 무엇도 기대할 수 없는 최종판결이다. 변화를 이끌겠다는 투구의 노력, 부조리를 바로잡으려던 투지 그리고 진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정신력이 있었던 시기는 그들의 젊은 시절 다 지나간 과거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 적응한 정신은 그렇게도 바꾸고자 했었던 그 전 세대가 만들어둔 침몰이 약속된 집단 정체성이다. 그리고 지금의 젊은 세대들까지 깨어있는 자로 살아갈 수 없게 관계 또는 지위 우위로 위기감을 조성하여 길들여 결국 부속품 이상이 아닌 존재로 만든 것에 대한 자신들의 한계에 대하여 깊이 뉘우쳐야 한다. 

미래 길잡이들은 배운 것을 의심하지 말고 내가 배운 것과 다르면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향한 전진을 하면 된다. 미래세대가 기대이고 기대가 사라진 사회는 전환점을 만들 수 없다. 또한 미래 길잡이들은 당면한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고 더 열심히 배워야한다. 그리고 성급하게 달려온 현재 길잡이들이 지금의 상황을 해명할 수 있도록 하고 치열했었던 본래 자기를 찾도록 하여 과거와 현재의 접촉점을 만들고 세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통해 사회 흐름에서 방관자로 있었던 모든 이들이 더 나아지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경험을 함께 할 수 있게 권유하고 요청해야 한다. 청년만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고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기대할 대상은 청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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