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의 문학광장] 마음을 씻을 수 있는 세상살이 어디 없을까

2026-08-28     정명희 시인·수필가
정명희 시인·수필가 (경기문학인협회장·경기산림문학회장)

  가슴이 아프다며 그 애의 전화 목소리가 울컥한다.
  덜컥 마음이 내려앉는다. “왜? 무슨 일이야?”
  놀라서 나도  몰래 걱정스러운 목소리, 유선을 통해 흘러간다.
 
  태어날 때 물거품 같이 금방 스러질 것 같았던 그 애가 시집간 지 십년이 넘었다, 식구들이 모이면 유모어를 펼치는 재치가 남달라 박장대소를 하게 만드는 딸이다. 잘 웃지 않는 남편도 그 애 앞에선 가식없이 껄껄거린다. 성격도 부녀가 똑 같아 말을 하지 않아도 순식간에 알아챈다. 그래서 좋은 면이 많다. 몇 십년을 살아도 남편의 행동이 잘 이해가 안 돼서 쩔쩔매는 나를 대변해서 그 애가 중간 역할을 너무도 잘한다. 고마운 부분이다.    
 걱정이라면 시집 간 이후로 지나치게 친정 걱정이 많아 우리 부부가 잘 못 사는 게 아닌지 주위를 돌아 볼 때가 많다. 쓸데없는 걱정을 왜 하느냐고 묻고 싶어도 시댁환경과 비교되는 점이 있을 테니 다름에 대한 걱정일 것이리라. 덕분에 딸을 통해 내 친정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 보곤 한다.

 그 애는 결혼 할 때 아기를 열 명 낳겠다고 해서 사돈내외를 놀라게 한 세상물정 모르는 딸이었다. 요즘에 무슨 열 명까지. 그런 허무맹랑한 말에 사돈내외는 벙글거리며 좋아했다. 겨우  아들 하나 낳는데도 7개월 때부터 조산기가 있어 산부인과에서 입퇴원을 계속하며 지냈다.    
 시집가서 부쩍 어른이 된 딸이기에 너 닮은 딸 하나 더 낳으라며 주문을 해도 듣지 않는다. 
 명리학 공부를 하더니 자기 사주에는 아들만 있다며 거절을 한다. 세월은 정신없이 흘러 손주는 벌써 초등학교 삼학년 그애의 결혼 생활은 벌써 만 십년이 넘었다.  

 “병원은 어떻게 가 봤어?”
 이제껏 무탈하게 살아온 딸이 자랑스럽고 고마운데 무슨 병이 생겼을까? 고내한 걱정이 든다. 생각을 자꾸만 하다 보니 상상 속 별별 걱정이 다 들기 시작한다. 며칠 뒤 이 병원 저 병원을 알아본 뒤 전화가 왔다. 병원 잡기가 너무 어려워, 예약을 할 수가 없었는데 다행히 인근 지역병원을 찾았다고 했다. 
 
 그 후 석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병원 출입이다. 면역결핍이라며 염증치료를 위해 시술도 하고 항생제를 먹고 있다. 워낙 밝고 명랑해서 걱정은 안 하는 것 같지만 무심코 항생제를 많이 먹어 나중에 걱정이 된단다.     

  엄마라는 자리 참으로 고귀하며 소중하지만 당사자에게는 수많은 경우의 수로 인해 힘들기 마련이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 밖으로부터의 생활파고, 생각지도 않았던 불상사가 겹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르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다. 사랑이 넘치고 믿음이 가득해서 서로 마주 보면 빛이 나는 최고의 시점에서 결혼을 한다. 준비해야 할 것도 많은데 어떻게 부모가 되는지 잘 모르면서 배우지도 않고 그냥 해 버린다. 부부간에는 더 수많은 갈등의 요소를 안고 살아간다. 금슬 좋은 부부는 잘 맞춰가며 적응을 하지만 대부분의 부부들은 크고 작은 갈등에 쩔쩔매기도 한다.

 그 애도 어쩌면 결혼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을 터, 아프다고 생각하니 직장생활 한다며 친정엄마 노릇을 하나도 하지 않은 자신이 원망스러워진다. 미안하고 걱정되고 잠을 설치며 뒤척인다. 밤마다 그 애는 아프고 나는 뒤척이고 있다.

  그러다 새벽이 오고 아침이 오는동안 우기를 방불케 하는 천둥 번개와 세찬 빗줄기가 다녀간다. 창문을 여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파란하늘이 얼굴을 드러낸다. 저 파란 하늘처럼 세상살이에 찌든 나도, 가슴이 아프다며 찡찡대는 딸아이도 마음속에 옹이진 모든 것을 씻어 낼 수 있는 세상이 있었으면 좋겠다. 일을 해서 행복하고,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은 무엇일까 찾고 싶다. 여행 가듯 어딘가로 가보면 한 톨의 아픔도 한 줌의 고민도 없는 세상이 나타날까.    팔이 아프도록 몸이 아프도록 일을 해도 행복해서 한 없이 웃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딸아이처럼 항생제를 먹으면서 아픔이 나을 수 있다는 기대로 친정엄마 앞에서 아무 걱정 없이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저 파란하늘처럼 싱그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