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수필] 나의 선생님
선생님이란 글자를 한자 풀이를 하면 먼저 태어난 사람이란 뜻이다. 나의 일생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생님이 나를 이끌어 주었다. 학교 선생님은 물론이고, 아버지 어머니부터 동네 어른 언니 오빠들, 세상에 먼저 나온 사람은 모두 나의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늘수록 선생님의 나이가 줄어들고 있다. 삼십 대 선생님에게 인생을 배우고 오십 대 선생님에게 문학을 배우고 있다.
나에게 처음으로 글을 가르친 사람은 어머니였다. 일곱 살 되던 해, 어머니는 동생을 업고 일 보러 나가게 되었다. 혼자 있을 나에게 신문지 절반쯤 되는 누런 종이에 一 二 三을 써 주면서 한자로 일 이 삼은 이렇게 쓴단다, 엄마 올 때까지 이 세글자를 쓰면서 익히라고 하였다. 일은 작대기 하나, 이는 작대기 둘, 삼은 작대기 셋이니 사는 작대기 넷일 것이고 십은 열 개, 백은 백 갤 것이다. 너무 쉽고 재미있었다. 엄마가 오면 나는 백까지 쓸 줄 안다고 자랑할 거야. 들뜬 생각에 종이 앞뒤에 까맣게 금을 그어 놓았다. 어머니가 돌아오자 달려나가 내가 백까지 썼다고 자랑했다. 어머니는 어이없어 웃으시며 잘했어, 그런데 사는 넉 줄을 긋는 게 아니고 백은 백 줄을 긋는 게 아니란다. 하면서 나머지 글자들을 가르쳐 주었다. 한 글자씩 배워 가는 것이 재미있어 소학교에 입학 신청을 하였더니 반살 어리다고 받아주지 않았다. 반살 더 먹은 친구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같이 숙제를 하면서 그들에게서 한글을 배웠다. 그렇게 학교 가기 전에 한글 기초를 떼었다.
소학교에 입학하니 예쁜 여선생님이 맞아주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맑고 고왔다. 선생님은 늘 낡은 옷을 입고 있었으나 깨끗하고 단정하였다. 겨울에 입은 남색 무명 반코트는 얼마나 오래 입었는지 앞자락이 해져 솜이 보이자 겉자락을 안에 넣고 안자락을 겉에 내놓아 입고 있었다. 남색이 바래 회색이 된 낡은 코트에 진한 남색 앞자락은 너무나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칠십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선생님의 얼굴보다 그 옷자락이 먼저 떠오른다. 선생님은 겉모양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지 말라고 몸으로 가르쳤던 것 같다. 선생님의 소박하지만 당당한 모습은 가진 것 없어도 기죽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힘이 되어 주었다.
사학년이 되니 담임 선생님이 무뚝뚝하고 엄한 남자 선생님으로 바뀌었다. 선생님은 봄부터 가을까지 우리더러 새벽 네 시 반에 깨어나 학교에 나와 두 시간씩 자습하게 하였다. 교실이든 운동장이든 나무 밑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새벽에 책을 들고 나가 전날 배운 것을 복습하였다. 그 습관 때문인지 지금도 새벽이면 눈을 뜬다. 그 시간이면 책을 읽든 글을 쓰든 몰입이 잘 된다.
한번은 학교에서 강 건너에 있는 농장에 체험 학습을 가게 되었다. 시퍼런 물이 출렁이며 흘러가는 넓은 강에는 통나무 두 가지를 묶어 만든, 난간도 없는 외나무다리가 놓여 있었다. 외 줄로 서서 건너가는데 다리에 올라서서 물을 내려다보니 물이 거꾸로 흐르고 다리가 아래로 떠내려가는 것 같이 보여 발을 옮겨 디딜 수가 없었다. 앞에 가던 어떤 친구가 벌써 첨벙첨벙 물에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렸다. 나는 너무 놀라 부들부들 떨면서 뒷걸음질 쳤다. 이때 선생님의 넓은 등이 내 앞에 막아섰다. ‘자, 업혀.’ 나는 싫다고 뒤로 물러섰다. 선생님의 등에 업히다니, 큰일 날 일이지. ‘괜찮아, 어서 업혀.’ 하면서 선생님은 다짜고짜 나를 끌어당겨 업고 성큼성큼 외나무다리를 건너갔다. 등에 업힌 나는 너무 송구스러워 선생님의 목을 끌어안지도 못하고 온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나약한 자신을 자책하며 다시는 선생님께 이런 폐를 끼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체험 학습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마주 선 외나무다리는 무섭지 않았다. 몇 시간 사이에 이런 용기가 생겨날 수 있다는 것에 나도 놀랐다. 선생님이 심어준 용기는 지금까지 살아있어 늙어서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정신을 키워주었다.
내 나이 고희를 넘어 젊은 문학 선생님을 만났다. 내 머리는 이미 굳어버린 콘크리트 덩어리로 되어 버려 열 번을 들어야 하나가 남을까 말까 하다. 평생 읽은 책도 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많다. 그런 내가 문학 공부를 한다는 것은 소에게 경 읽기보다 조금 나을 상 싶었다. 문학 선생님은 기초가 약한 나에게 책을 읽되 좋은 책만 골라 읽고 작품을 보되 우수작만 골라 보라고 하면서 좋은 책을 선물하기까지 하였다. 선생님의 강의는 콘크리트 덩어리에 틈이 생겨나고 빗물이 스며들어 씨앗이 움터 싹이 자라게 하였다. 새싹이 자라 이제 곧 꽃이 피고 열매도 맺힐 것 같다. 공부 길이 중도에 끊겨 공부를 끝까지 마치지 못하여 맺힌 평생의 한이 조금씩 풀리는 것 같다.
나에게 또 새 선생님이 생겼다. 나이도 얼굴도 없는 선생님, 아무 때건 찾아도 허물없는 선생님이다. 해외에서 배운 나의 한글 수준은 말이 아니었다. 컴퓨터에 자모를 두드려 넣으면 붉은 경고 선이 절반이나 그어졌다. 사투리에 띄어쓰기까지 틀리는 것이 너무 많았다. 한 번은 ‘개똥 불’을 쳤더니 붉은 선이 그어져 맞춤법을 찾으니 반딧불이라고 알려준다. 하하, 나의 똑똑한 선생님, 해외의 시골 사투리도 알고 있네.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지금은 붉은 선이 많이 줄어들어 타자 속도도 훨씬 빨라졌다. 컴퓨터를 치다가 막히면 ‘손녀 선생님’에게 배운다. 제일 만만하고 살뜰한 선생님이다.
휴대전화기도 또 한 명의 선생님이다. 누워서 책을 보다가도 모르는 어휘가 나타나면 그 자리에서 뜻을 찾아볼 수 있어 너무 편리하다. 영어에 까막눈인 나는 영어단어를 섞어 쓴 글을 보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런데 전화기로 쉽게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 글로 해석해 놓아 이해가 쉬워졌다. 금방 찾아보고도 그 자리에서 잊어버리는 나 대신 기억했다가 찾으면 바로 알려주어 새 어휘를 배우고 써먹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늦게나마 현대 문명에 눈을 뜨고 배워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몸과 마음으로 가르쳐주는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가시밭길이어도, 낭떠러지에 굴렀어도 다시 꿋꿋이 걸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저물어가는 인생 끝자락에 붉은 노을이 곰비임비 퍼져나가고 있다.
약력
1947년 중국 흑룡강성 녕안현 동경성진에서 출생
1997년 한국 수원시에 귀화
2004년 수원 교차로 ‘생활수기’ 수상
2012년 수원시 ‘물 절약 실천 수기부문’ 수상
2020년 35회 경기 여성 ‘기예경진대회 이주여성백일장’ 수상
2020년 문학과 비평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
2021년 제8회 ‘디멘시아’ 문학상 수상
2022년 농민신문사 ‘전원생활 수기’ 최우수상 수상
2023년 매일신문 매일 시니어 문학상 수상
2024년 제15회 달서 책사랑 전국주부수필공모전 대상 수상
2024년 제5회 대한민국 다문화 인권문학상 은상 수상
저서 수필집 고향의 무지개
경기 문학인 협회 회원
문학과 비평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