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의 문학광장] 부당거래

2025-04-17     정명희 시인·수필가 (경기문학인협회장·경기산림문학회장)
정명희 시인·수필가 (경기문학인협회장·경기산림문학회장)

평소와 같이 동당거리며 출근하는 아침이었다. 
주차장 앞에서 한 아저씨가 왔다갔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저씨, 뭐하세요?”
눈길이 마주쳐서 인사를 하며 말을 걸었다.
“이 차 주인이세요?”
순간 무슨 일인가 싶어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차가 고장이 나서 문제라도 있나?’
걱정이 앞서서 당황한 모습으로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아침인데도 술 취한 모습, 늙수그레한 모습이 그동안 아는 모습은 아니었다.
“왜 전화를 안 받으세요? 제가 어제 밤에 차를 대다가 그만 차를 긁어 버렸어요.”
또 한 번 덜컹, 무너진다.
차 사고는 별로 기분 좋지 않은 일 주으이 하나니까. 내가 사고를 냈던 상대방이 냈던 문제가 아니다. 그저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앞으로의 일이다. 서로 사유를 이야기 하고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험회사에 연락하면 된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부담이다. 몇 마디 전화를 하면 그만인 것을 절차에 대한 걱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차를 잘못 댔나? 그래서 아저씨가 차를 긁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인가?’

잠시 헝클어진 생각을 뒤로하고 물끄러미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바쁜데, 오늘도 지각할 텐데’
아저씨의 말은 뒷전에 두고 생각은 자꾸만 앞질러간다.
“보험회사에 연락하세요.”
하지만 아저씨는 쩔쩔매며 무슨 말인가 자꾸만 하려고 한다.
“제가요. 이 주차장에서 여러 번 차를 긁었어요. 한 번도 그냥 간적 없어요. 전부다 보험처리를 했거든요.  몇 백 만원이 들어갔는지 몰라요. 지금 저는 바빠서 가야해요.”
명함을 드리고 가려고 하니 또 붙잡는다.
“차가 제 앞으로 안 되어 있어요, 딸 앞으로 되어 있어 말하기가 어려워요. 어떻게 안 될까요?”
난감하다. 무슨 말인지.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사실 내 차는 오래 된 고물차다. 차를 바꾸려고 하다가 미련을 떤지 벌써 몇 년이 넘었다. 이상하게도 차만 바꾸려고 하면 소소한 일이 겹치고 해야 할 일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결국은 차 살 생각이 사라져 버린다. 그 것도 한 두 번이 아니고 수 차례가 넘었다. 해마다 수리비도 많이 들어간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사느냐고 눈살을 찌푸리지만 점점 더 내 판단은 느리고 시간은 나를 잡아당긴다. 할 일이 너무 많다며.

명함을 전해주고 전화번호를 딴 다음 회사에 가는 동안 마음이 편치 않다. 차를 맡기고 수리하는 동안 렌탈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시간이 흐르니 해야 할 일들이 첩첩산중이다.
‘왜, 나는 여유롭지 못할까? 이런 일상의 소소한 일까지 부담스러워 하며 긴장을 하다니’
스스로에게 한탄을 하며 곰곰이 방법을 모색한다.

지인이 아는 공업사를 이야기 해 준다. 저녁 늦게 공업사를 찾아갔다. 차가 긁힌 부분을 보더니 보험회사에 연락하지 말고 그냥 몇 십 만원 달라고 해보란다. 무슨 말인지 헷갈려서 멍청해진다. ‘수리를 해 준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잘 모르겠다.

내 해석이다. 여든이 넘은 파지 줍는 아저씬데 그냥 봐주라는 건지. 이제부터 생각을 해야 한다. 그냥 됐다고 말할까. 
하루를 그냥 넘기고 그 다음날 오후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 렌탈비도 들고 고치는 값도 들지요. 보험 수가도 올라가니 그냥 타고 다닐게요. 차를 다시 살까 생각하고 있어서요. 수리비 약간만 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나니 조금은 안도가 된다.
 ‘으휴, 돈 좀 많았으면 좋겠다. 기분 좋게 그냥 가세요.’
라고 이야기할 배짱과 여유는 내게 정말 없는 건가. 
기분 좋아 또 만나자고 하는 아저씨의 전화 목소리에 왠지 내 자신이 쪼그라드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