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의 문학광장] 화마가 할퀴고 떠난 안동 눈물의 화재현장을 다녀오다
2021년 수원문인협회와 안동 와룡문학회는 MOU 체결을 하고 문인들의 문학교류를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문학교류를 했던 관계로 MOU체결은 자연스러웠고 문학지 발간 기념회 등 행사에 참석해서 당시 고00회장님 댁에서 밤새워 문학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시피 안동은 유서 깊은 양반의 고장이며, 예와 문의 고장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문의 고장일 것이다. 우리는 그 곳을 방문할 때면 그 곳이 고향인 김00소설가의 자택을 방문하여 감회를 새롭게 담아 오곤 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김00 소설가의 집에는 간간이 바람만 머물다 가고 사시사철 피고 지는 꽃잎들의 수런거림과 산새들의 앙징스런 소리만이 가끔씩 정적을 깨고 있다.
김00소설가의 자택에는 가을이면 익다 만 붉은 감들이 손님들을 기다리다 지쳐 떠나간 나뭇가지에 몇 알의 감들을 그리움인 양 매달고 있다. 김00소설가는 스스로 집 옥상에 올라가 삭풍에 꺾인 나뭇가지를 들고 홍시를 직접 따서 함께 온 문인들에게 싸 주곤 했다.
그 다음에는 안동근처 문화마을을 찾아 그야말로 문하기행을 하곤 했다. 이육사문학관이라던가, 퇴계 이황의 도산서원, 최치원문학관 등 대표적 하회마을, 절로는 고은사를 꼽게 되는데 몇 개의 코스를 잡아 관람을 하고 김씨 문중의 고택을 방문하고 오기도 했다.
올해 안동의 봄은 특별히 재앙이었다. 심술궂고 앙칼진 꽃샘추위와 함께 건조한 기후가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화재를 동반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 시작은 얼마 전부터 날씨가 을씨년스럽게 춥고 덥고를 반복하더니 경북 의성에서부터 야릇한 소식이 주야간을 막론하고 쏟아져 들어왔다. 화마의 광란 소식이었다. 산불이 몇 분도 안돼서 십키로를 갔느니, 이 산 저산을 건너 뛴 산불이 잠자고 있는 마을을 덮쳐 온 마을이 다 불에 탔다느니 흉흉한 말들이 난무하고 실제로 겉잡을 수 없는 산불이 몇 날 며칠을 잠잠해지지 않고 번져 갔다. 안동사람이면 누구나 전전긍긍 아예 피난 준비를 하고 짐들을 쌌다 풀었다 하며 쩔쩔맸다. 바깥나들이는커녕 엄습해 오는 공포가 속보로 쏟아지는 보도에 가슴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점점 더 건조한 날씨는 광풍을 몰고 와 밥을 짓던 대형 밥솥을 날아가게 하고, 조금씩 일어나던 산불은 도깨비 불이 되어 이 산 저산을 날아다녔다. 지나가던 어르신 등덜미를 후려쳐 까맣게 타 버린 시체가 나 뒹굴고, 구순이 다 된 할머니가 나는 죽어도 좋으니 어린 손자를 구해 달라고 울부짓는 괴성이 산들을 넘어 커다랗게 웅웅거렸다. 기어코 산불은 초고속으로 내달리더니 결국은 안동 산줄기에 들어붙어 무서운 기세로 타 들어가기 시작했다.
안동이라 함은 말 그대로 편안한 동쪽의 마을이라는 뜻이며 안동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기 좋아했고 어떤 환란이 닥쳐도 꿋꿋하게 지켜내 온 선비의 고장이었다. 그 선비의 고장이 하루 아침에 화마로 인해 쑥대밭이 되었다.
내가 한 마을의 보건지소장인 이병숙 소장과의 인연으로 안동에 다녀온 것은 화마가 서서히 잠들고 평온을 되찾은 때였다.
수원에서 11시에 떠나 세 시간 반을 달려 안동에 도착한 것은 오후 두시 경, 이번 화재로 집과 과수원을 잃은 와룡문학회 문인들에게 물품을 전달하러 가기 위해서였다. 박00 문인은 다리를 다쳤는지 절고 있었다. 아마도 이번 화재 때문에 심적으로 고통 받고 있었으리라.
그래도 의연하게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같은 문인 김00씨 집도 운영하던 우체국도 전체가 다 소실되어 형체를 알아 볼 수가 없다며 울먹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단편적으로 화재현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으며 울고 또 울고 하다가, 가져간 구호물품을 전해 주고 고00 전 와룡문학회 회장이 안내로 고은사 주변을 돌아보고 왔다.
어서 빨리 이 슬픔을 딛고 안동을 비롯한 전국 산불로 인한 피해를 입은 지역 분들이 안정을 되찾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며 무거운 발길을 돌렸다.
이제 4월 5일은 식목일이다. 여기저기 산림보호를 외치고 탄소중립을 실천하자고 캠페인을 벌리고 있다. 우리 문인들도 글로써, 행동으로써 정신무장을 해야 한다. 재난을 입은 현장에 가서 봉사도 해야 할 것이다. 올해는 특히 불에 탄 산림을 보호하고 가꾸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