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의 문학광장] 삶의 뿌리에서 울리는 소리
초승달이 제법 도톰해져 가는 삼월의 초저녁이다.
두 달에 한 번 만나는 오랜 친구들을 작별하고 돌아오는 길 이런 저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산발적으로 이어진다.
늘 바라보던 밤하늘에 떠 있는 달, 초승달로 떠서 두둥실 밤하늘을 채우는 넉넉한 보름달까지 수도 없는 시간들이 친구들과 흘러갔다. 갑자기 저 하늘의 초승달은 무슨 연유로 무엇을 담기 위해 저리도 먼 하늘에 떠있을까 하는 생각의 장으로 들어간다.
영롱하면서도 신비한 빛으로 발하는 오묘한 힘의 에너지에 감탄해서 달을 바라보며 넋을 놓을 때가 많다.
언제 보아도 달의 신비한 모습은 변함이 없다.
달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보면 세상의 일들과는 결별이 된다. 한참을 달의 신비 속에 빠져 바라보다가 저절로 달과 관련된 인연들 속으로 들어간다.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가끔 들리는 지인의 집에는 옥으로 만든 전시물품이 가득하다. 그의 취미는 깊고 길다.
사실 처음부터 옥을 수집하는 것은 아니었다. 몇 십 년이나 되는 그의 오랜 취미는 수석 수집이었다. 그는 수석을 채집하러 다니는 것 보다는 수석을 모으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여유가 생기면 수석 가게에 가서 살았다. 해가 갈수록 그의 집에는 오만가지 모양의 수석들이 늘어갔고 집안 곳곳마다 크고 작은 수석들이 쌓여만 갔다.
심지어는 현관 신발장 속에, 싱크대 속에, 베란다에 드디어 옷장 속 까지 수석들이 들어찼다. 자식들도 그의 아내도 그의 수석사랑을 말리지 못했다. 결국 그의 아내는 남편의 수석 집착에 대해 너무나 충격을 받아 결국은 집을 나가 버렸다. 집안은 궁핍해졌고 드디어는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채가 쌓이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반면 처음 만나는 수석가게 주인은 그를 만나면 대박을 만났다고 좋아했다. 마음에 드는 수석을 보면 통장 생각은 하지 않고 우선 사고 마는 그의 강한 수석 사랑에 입이 벌어졌다. 이 사람과 잘 지내면 수석 팔기는 식은 죽 먹기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 주인은 이제 수석 팔 걱정은 없겠다 싶어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뱉으며 정성을 다해 수석의 품질과 모양을 설명했다.
어느 날 우연히 그를 만나서 담소를 하다가 수석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수집한 수석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언제 어디서 수석을 산 이야기며 수석에 새겨진 문양에 대하여 세세하게 알려주며 수석의 이름을 붙인 이유도 덧붙여 말했다.
얼마 후 생각지도 않은 일로 그에게 새로운 인연이 생겼다. 아내도 떠나고 아이들마저도 아버지의 취미생활을 한탄하며 떨어져 간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에게 구세주 같은 여인이 생겼다. 그녀는 지극정성 그를 따라 다니며 수석가게를 함께 다니기도 하고 여행도 함께 했다.
마음에 드는 수석을 사고 싶어 수석가게를 떠나지 못하는 그를 위해 거금을 투자해 그의 욕구를 채워주었다.
그런 연유로 그의 눈길은 수석에서 값이 제법 나가는 옥으로 바뀌게 되었다.
집 안의 수석이 있던 자리는 옥으로 채워져 갔다. 대한민국의 꽤 괜찮은 옥은 그의 집으로 팔려 들어갔다.
그의 집은 아름다운 옥으로 가득찼다. 그는 옥 속에 들어 있는 다양한 문양에 대해 자세히 감상할 기회를 주었고 나 역시 옥을 감상하는데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아예 옥 속의 문양을 보고 감상하기 위해 수석 집에 있는 것과 같은 옥 감상용 세경을 사고 말았다.
평생 수석과 옥을 전시한 내공이 밖으로 다져져 펼쳐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다양한 옥에 대한 설명은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일품강의였다.
그 옥에대한 설명을 들을 때 마다 나는 겹쳐져 보이는 신비한 달의 모습을 연상했다. 그가 옥을 바라보며 심취하듯이 나는 달의 신비한 모습에 빠져 있는 나를 보게 된다.
내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한결같은 생각은 달의 신비함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마치 수석과 옥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과시하는 그 지인처럼.
사람마다 쌓아 온 생각은 엄청나게 다르다. 그 생각은 처음부터 알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렴풋이 체득하게 된다. 내가 알고자 하는 달에 대한 신비감에 대한 무한한 의문과 궁금증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일각의 점 같은 것일지도 모르는 하나의 작은 소우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인간사 존재의 뿌리는 무엇인지 알아내고 싶을 때가 많다.
수석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보이는 그, 달의 신비감 속에 빠져들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바라보는 나, 그 근원은 어디에서 나오는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남은 순간까지 숨어있는 삶의 근원, 살아있는 그 뿌리와 소리를 들어 세상에 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