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의 문학광장] 푸른 뱀, 새봄의 문을 열다
오늘은 입춘(立春), 봄이 시작되는 날이다. 새봄을 맞는 올해는 의미가 남다르다. 푸른 뱀이 눈을 뜨고 기지개를 펴며 잠자고 있던 정신을 추스르기 때문이다. 그 정기를 받아 이번 봄에는 새로운 꿈을 꾸며 휘감고 있던 묵은 때를 벗어버리고 유려하게 비상하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는 봄이 오면 대자연이 순환하는 윤회의 고리를 깨닫게 된다고 한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은 진리인 것 같으면서도 오묘하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순환하는 삶과 같기 때문이다. 이 변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스스로를 되새겨보는 시간이 봄인 것이다.
순환의 계절 첫 번째 다가오는 봄은 제일 많이 변화가 무쌍하다. 반면 제행무상을 느끼게 한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화려하며 새로움이 충만한 느낌 뒤에는 왠지 인생의 허무를 느끼게 하는 무상함을 동반한다. 얼마가지 않아 눈부시게 아름답던 꽃잎은 떨어지고 결국에는 흉물스런 모습으로 변해서 원초적 대지로 귀환한다. 마치 사람의 일생과도 같음을 봄은 보여 주려고 애쓰는 것 같다. 너무 정신없이 한 곳만 바라보며 살다가 자신도 모르게 스러져 가는 자연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챙기라는 의미다.
봄에는 여기저기 새로운 씨앗을 심는 만큼 기대도 많을 것이다. 또한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피어나는 잎들의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면 마냥 행복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봄에는 “선한 씨앗을 심으면 선한 열매를 맺는다.”(善因善果)라고 말씀하신 부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싶은 때이기도 하다. 마치 사람이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순결무구한 정신으로 기도하는 마음이라고나 할까. 봄의 나무와 꽃들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싹을 틔우고 꽃봉오리를 맺으며 항차 맺게 될 귀한 열매에 대하여 정성을 다하리라.
새봄, 제일 먼저 산과 들에 피어나는 진달래 철쭉꽃이 이 곳 저 곳에서 마치 물을 들이듯이 번져간다. 어느 시인은 산과 들이 활활 타고 있다며 이 산 저 산 옮겨 붙는 불과도 같다하며 봄꽃 피는 산을 비유하기도 했다. 푸른 뱀의 해에는 어떤 희망으로 봄을 맞이해야 할까.
우리 겨레는 음양오행 사상에 따라 오방색으로 청, 홍, 황, 백, 흑색을 들고, 오행에 알맞게 오륜, 오미, 오방 등을 정했다.
그러면 스스로 허물 벗고 기회를 포착하는 을사년 뱀과 관련된 연유를 따라가 보자.
우리선조들로부터 내려 온 12개의 띠 중에 뱀띠 해 을사년은 천간 중 갑과 을이 오행상 목성인 청색이므로 푸른 뱀의 해가 되는 것이다. 같은 뱀띠라도 오방색에 따라 정사년은 홍사, 기사년은 황사, 신사년은 백사, 계사년은 흑사가 된다. 을사년 하면 우선 을사의병, 을사늑약, 을사오적, 을사사화 등 굵직한 역사적 비극이 떠오른다. 새해 을사년의 운세는 천간과 지지가 겉으로는 목생화로 상생이지만, 속을 잘 들여다 보면 복잡한 갈등 관계도 엿보인다. 어디 역사의 비극이 하늘 탓, 운세탓이랴? 개인의 사주팔자도 사람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따라 운이 열리듯이, 국운도 국민들 집단지성의 발휘와 공공심으로 헌신하는 지도자들의 구실하기에 달려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서양에서는 뱀을 아담과 이브가 원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게 만드는 사탄으로 그렸다. 한편 성경 마태복음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10:16)는 말씀처럼 뱀을 지혜의 상징으로 그리기도 했다. 우리 겨레는 뱀을 지혜와 다산, 재물과 풍요의 상징으로 인식했다. 집구렁이는 업이라 하여 집안의 신주처럼 모시기도 했다.
서민들이 많이 보던 당사주에서도 뱀띠는 문창성이 있어서 지혜롭고 공부 잘하고 관운도 있다고 한다. 뱀을 신성시하여 해치면 동티난다고 하는 속설이 전승되서, 전라북도 고창지역에서는 학교마다 소풍날 비만 오면 소사 아저씨가 구렁이 잡아서 비 온다는 이야기가 흔했다. 고구리 고분벽화 현무도는 뱀과 거북이 교미하는 그림이고, 삼실총의 뱀이 교미하는 그림 교사도도 다산과 풍요를 기원한 상징이다.
을사년 새해, 새봄 우리의 삶에도 따뜻하고 현명한 지혜의 꽃이 활짝 피어나 조금은 고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든 존재의 행복을, 모든 아픔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새해, 새봄이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