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의 문학광장] 가을 곁으로 간 문장
가을 낙엽 몇 잎이 나뭇가지 끝에서 속절없이 바람에 흔들린다. 며칠 전만해도 소복이 덮혀 의지했던 나무둥지를 정처없이 떠난 나뭇잎들. 어디론가 사라진 그 후, 싸한 느낌은 창 밖에서 지난밤마저 어둡게 덧칠하고 있다. 한 잎의 나뭇잎들도 가을 곁에서 천 길을 무너트리며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는데 그 광경을 무방비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한가.
가을엔 사라지는 것에 대한 체념이 곳곳마다 도사리고 있는 걸 안다. 벽을 따라 앓는 바람소리에서, 창문 밖에서 서성이다 사라지는 달빛의 고즈넉함에서, 이어서 이울어지는 달빛의 옆구리를 보면서, 어쩌면 우리 인간들도 아무렇지 않은 척 그 상황을 이해하려 한다는 것이다.
길게 느려지고 천천히 사위어가면서 한 잎의 속정마저도 익숙해져 있던 시간들 속에서 놓아 버린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아무 것도 아닌 무력한 점들, 미세한 충격에도 바들거리는 생명들이 떨어져 나가는 일은 어쩌면 그렇게 잘하는지 한 계절의 위력은 대단하기만 하다.
부서져 가는 건 어쩌면 애면글면 살기 싫어서가 아닐까. 굳이 아우성치며 발버둥 치는 쌉쌀한 순간에서 벗어나고 싶은, 시작에서 끝으로 달려가는 시간의 마음이 숙연하게 느껴진다.
카∼톡, 어쩜, 시인으로 등단한 친구가 새벽녘 시를 보내온다. 아마도 친구는 뜬눈으로 시어를 생산하는 고통을 낚았으리라. ‘소실봉 밑자락 / 창백한 황토흙 초침소리 / 잠 좀 자자’며 달래는 작고 외로운 외침소리까지 듣고 있는 친구의 불면의 사유도 같은 이유일 터.
친구는 채워도 채워도 더욱 텅 비어가는 인간들의 욕심다발에 스스로 놀라 마음의 촛불을 켜며 기도하고 있으리라. 그녀의 묵주는 말이 없지만 그녀의 마음을 천만 번 이해하고 있으리라. 한 고비 한 고비 넘을 때마다 깊고 깊은 기도소리는 하늘에 닿을 것임에 틀림이 없겠다.
밤새 정성들여 써 놓은 글 한 다발이 소리없이 사라졌다. 모처럼만에 기분 좋은 여유를 가져 저녁내내 사부작 사부작 이일 저 일을 하다가 그만 맹한 휴지통에 집어넣어 버렸다.
이리 저리 살펴도 온 데 간 데 없는 글다발을 찾는답시고 온 밤을 만들어 놓은 파일마다 휘저어 놓았다.
어느 땐 아무리 뒤척이고 버리적 거려봐도 미동도 하지 않던 시간이, 이번에는 누가 끌어당긴 것처럼 썰물처럼 흘러 지나간다. 벌써 새벽닭이 울었으면 몇 번은 울었으리. 무슨 조화련가. 다른 할 일도 많은데 몇 시간 째 사라진 글 다발에 미련을 두며 찾고 또 찾고 반복이다.
깊은 밤 곳곳에서 아쉬운 이별을 하는 기척이 쉬지 않고 일어나는데, 비웃기라도 하듯 미련한 욕심 그득한 마음을 휘저어 놓는다. 비우고 또 비우라는 무언의 충고이련만 애써서 써 놓은 글다발에는 도저히 비움의 마음을 더할 수 없다. 차라리 지나가는 달빛에게나, 벌써 사라져가는 희미한 별빛에게라도 그거 어디 갔느냐고 물어 보고 싶은 심정이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숨바꼭질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이젠 아예 잠은 사라지고 정신마저 똘방거리니 대책이 없다.
한 숨 돌리니 예전의 글들이 올올히 일어서 나좀 보자 한다.
어째 이런 일이, 글도 한 없이 쓰다 보면 는다는데 예전 글들이 훨씬 맛깔스럽게 여겨진다.
정신없고 화가 나니 마음 또한 진부해졌는가. 서툴고 허접한 문장 하나하나가 교태를 부리며 달라붙는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느지막한 가을 문턱에서 제대로 된 월척하나 낚아 보련다. 날이 훤히 새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