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의 문학광장] 내 마음은 울란바트라
맑고 푸른 여름하늘을 가슴에 담고 스쳐지나가는 바닷소리를 연주삼아 인천공항대교를 건너며 심장 뛰는 소리를 듣는다. 며칠간의 여행을 위하여.
산수유 꽃잎을 닮은 여름의 여인들은 몽골 울란바토르의 말없는 따스한 이끌림에 생각지도 않았던 여행을 떠났다. 칠순잔치라는 명분으로.
밤잠을 설치며 준비물을 챙기는 설레임은 좋았지만, 인천공항에 닿아 여행 가방을 내리는데 손잡이가 뿌드득하며 부서지기 시작하는 것으로 걱정 한부분이 돌아오는 내내 걸렸다. 난감한 일이었다. 무게가 제법 나가는 가방을 들고 다니는 일은 아득하고 부담되는 일이 분명했기 때문인데 원망하자면 이씨 문중의 대표께서 이미 예견의 팁을 주었다는 것이다.
끄집어 올려도 안되고, 밀고 당기고 실강이를 해도 전혀 미동을 하지 않는 가방은 이씨 문중의 아들이 하는 행동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칭 옹고집이라고 하며 일상에서 비틀린 행동을 하는. 다른 쪽으로는 자린고비라고 일명 거론되기도 하는 그는 여행가방을 챙기거나 어떤 물건을 사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 양말목이 닳고 닳아서 벗겨져도 신을 때까지 신던지 짝짝이로 신고 다닌다거나 아예 맨발로 다녀 버려서 보는 내내 불편하게 만드는 일상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사람. 그가 언젠가 아파트 분리수거 장소에서 주워온 꽤 쓸만한 여행가방을 동남아 여기저기로 돌아다니며 이리 저리 돌린 바람에 이미 수명이 다해 망가지게 된 가방덕분에 수시로 아슬아슬함이 따라다녔다.
하필 그 가방이 모처럼 나가는 몽골 나들이에서 살금살금 부서지더니 아예 손잡이가 없어져 버렸다.
급한 김에 층별 안내도를 살피고 이리저리 돌아다녀 보았지만 출국절차를 받는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통에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할 수 없이 공항을 잘 아는 아들에게 전화를 해 보았지만 입국 수속절차를 통해 들어간 후 면세점에서 살 수밖에 없단다.
결국 사지 못하고 그 후의 여정 속에서 가방문제는 가는데 마다 골치로 끝까지 속을 썩였다. 결국은 차를 타고 내리는 순간마다 팁으로 해결할 수밖에.
수시로 쵸코렛과 음료, 비타민 C, 작디작은 사탕알을 손에 쥐어주는 섬세한 여덟명의 여인들, 그들의 눈빛은 빛났으며 몽골 여행길은 꽤 델리케이트하게 진행되었다.
울란바트라 공항에 내려 가이드를 만나니 더욱 안심이 되는 것은 한국어가 유창한 삼십대 청년 가이드 덕분이었다. 그는 삼박사일 내내 생리학적 동족이라는 징표인 몽고반점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며 간결하고 정확한 여행 수칙을 알려 주었다. 나이가 오래 된 여인들은 감으로 이미 그 가이드를 분석하고 있었는데, 미숙한 것을 드러낸 장본인은 아는지 모르는지 나름대로 우직하게 일정을 관리해 주었다.
사실 삼박사일의 여정에 비해 지속적으로 카톡을 건드리는 준비물이 너무 많아 전날 밤은 아예 새우고 말았다. 그 탓인지 졸음은 시도 때도 없이 몰려와서 버스를 탈 때면 누가 보든 말든 잠 속에 빠졌다가 차가 도착하면 정신없이 일어서서 프로그램에 임했다.
생각해 보니 밤 기온이 낮아 전기매트 준비를 하라거나, 경량점퍼, 어린 가이드에게 줄 과자나 사탕, 옷가지 준비, 전기코드, 긴 전선 준비 등. 몇 시간 전부터 좌석표, 비행기표 예매 등은 차라리 야생캠프 준비를 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가방 부피는 커졌고 준비과정은 다른 여행보다 많아졌지만 사실 현지에서는 별로 사용하지 못했다.
그런 과정 이외에 이번 여행은 해방감을 만끽하기에 아주 좋은 절묘한 시점, 마치 금싸라기를 선물받는 기분으로 떠났음을 기억한다.
50분짜리 승마는 새로움에 도전하는 기분을 주었다. 처음에는 혹시라도 말에서 떨어질까 봐 걱정을 했는데 한 사람도 미루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기로 했다.
비탈길을 걸으며 말과의 교감을 하려고 노력하고 처음 해 보는 일이었지만 주의사항대로 말의 끄떡거림에 보조를 맞추거나 심히 요동치면 양 허벅지로 말을 감싸는 일에 신중을 기했다. 말을 타는 일은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단지 말등을 보며 측은해지는 묘한 감정이 일어났다. 그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지나갔고 기분이 좋아진 것은 과정 중에 완성의 시간도 가깝게 보였기 때문이었으리라.
그 후 삼박사일동안 독수리 체험, 초원 걷기, 사찰 돌기, 자동차에 올라 포즈잡기, 애국지사 박물관 관람, 징기스칸 승전보의 전설이 깃든 박물관, 울란바토르 도시 전경 살피기 등 꽤 여유로운 관광과 백화점, 시장 체험, 우리나라에 없는 캐시미어 100퍼센트의 옷 매장 방문 등이 전개되었다. 지나는 길가의 아이보리색 아이스크림은 달콤하고 맛있었다.
마지막 날 라마다호텔에서의 17층 야경은 칵테일을 곁들여 울란바토르의 낭만적 분위기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친근감이 드는 울란바토르. 첫날 푸짐하게 나온 고소한 소고기 식사와 이튿날 한국에서 먹어 보지 못한 맛있는 김치찌개, 양이 제법 많아 보이는 양고기등은 냄새와는 별 상관없이 입맛을 돋우는데 별 지장이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몽고반점의 내력을 캐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올라오는 것은 동질감이 주는 묘한 관심이었을까. 몽골에 대한 역사를 살피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깊게 드는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