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좋은시] 노랑부리 백로

2022-03-06     김재자 시인

하얀 머리 길게 늘어트린 새 한 마리

날개 접은 자태가 고요하다

무딘 부리는 세월과 세월 사이를

날아오는 동안 노랗게 익어 버렸다

 

건듯 부는 바람에

숨어 있던 그리움 기지개 켜며

뽀얀 속살 드러낸다

 

또렷한 눈망울을 가진 저 새

아지랑이 피는 골짜기 물끄러미 바라본다

가슴속 깊이 감춰 있던

푸르고 푸른 꿈이 기지개를 켠다

 

머뭇거리는 사이 마파람 한줄기

슬픈 전설을 뿌리며 세상 저편으로 사라졌다

물 오른 나뭇가지 살랑 살랑 흔들린다

 

다시 푸른색으로 채색하고 싶은

산목련 한 그루 조용히 앉아

또 다른 봄날 기다리고 있다

 

어두운 땅 밑으로 숨어 오는 봄

어느새 노랑 꽃다지꽃 한 줌 뿌려 놓고 있다.

 


시평(詩評)

노랑부리 백로는 그 자태가 우아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선비들의 시제(詩題)나 동양화 소재로 환영을 받는 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는 희귀 조류다. 한 세월을 살아온 노랑부리 백로 한 마리, 꽃피고 열매 맺고 그리고 결실의 보람을 느끼고 있는 산목련을 바라보고 있다. 이것은 한 생애의 삶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노랑부리 백로와 산목련은 어쩌면 동병상련을 느끼는 아름다운 새와 나무다. 그러한 나무와 새가 살아가는 동안 항상 행복한 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온 힘을 다해 살아 왔지만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고 때론 거대한 바람 속에서 오해의 상처를 입기도 한다. 따뜻한 봄 햇살에 그리움을 느끼는 노랑부리 백로, 젊은 날 푸른 추억을 기억하며 또 다른 봄을 기다리는 사이, 봄은 어느새 땅 밑으로 다가와 봄의 전령사인 노랑 꽃다지꽃을 피우고 있다.

한국경기시인협회이사 정겸


김재자 시인

약력

경기화성 출생

시집 『말 못하는 새』발표로 작품활동

글샘동인, 현재 용인병원유지재단 행정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