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의 문학광장] 문학의 길에서 돌아보는 내 인생의 수레바퀴

2021-10-25     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나이가 집에서 부르는 나이로 여섯 살이었으니 만 4년 6개월 된 아주 어린아이 때였다.

 교사이신 부모님께서 시골 외갓집에 다녀온 나를 보고 깜짝 놀라시며 촌스런 사투리를 쓴다고 걱정하셨다. 그 이듬해 학교에 청강생으로 다짜고짜 집어넣은 것이 평생학습의 입문이라고 볼 수 있다. 부모님 덕에 평생 학습을 하게 되었으니 고맙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한 내 인생의 수레바퀴는 그렇게 굴러가게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너무 학교를 일찍 들어가 많이 아프기도 하고, 교우관계며 학습적응에도 뒤처져 힘들었다. 입시시대였던지라 그 옛날에 초등학교부터 야간자율학습을 경험하고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까지 나와 무난하게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무언가 아쉬운 것이 내 머릿속을 짓눌렀다. 아마도 스스로 좋아서 할 수 있는 나의 관심 영역에 채움이 덜 되었던 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채워지지 않는 삶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고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도 하면서 터득한 것이 나에게는 천직으로 문학에 입문하는 소명 같은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꿈이 현실이 된 것은 나이가 쉰 살이 넘어서였다. 꿈에도 그리던 문단에 입문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았던지 지금도 그 때 일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막상 문단에 나오니 나의 작품은 각이 지고 답답하며 감성이 없는 글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운 남편이 먼저 ‘정이라고는 하나 없는 글’이라고 공격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창피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면서 문학에 대한 서적이란 서적은 시간만 나면 찾아서 읽었으며 직접 현장에서 문학강의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등단까지 한 나의 글이 뭇사람들에게 지리멸렬하게 외면을 당하니 혼란스러울 수 밖에.

 다시 마음을 다잡아 어렸을 때 이미 읽었던 문학책을 다시 사서 읽고 문학강좌를 정신없이 들어가며 글쓰는 작업에 몰두했다. 어느 날은 밤새워 글을 쓰다 보니 훤히 먼동이 튼 것을 알고 부랴부랴 직장에 출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평생학습이란 생각은 못했고 자연스러운 직장생활의 일부였으며 오로지 그렇게 사는 삶이 최고라는 생각에 긍정적인 사고로 모든 학습을 따라 했던 것 같다.

 지금도 나는 주위사람들에게 학습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이유는 햇수로는 남보다는 많은 강좌를 듣고 평생학습을 했는데도 무엇 하나 전문적이지 못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냥 이것 저것 도전하기만 했지 수확이 없고 건져낸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특히 문학이라는 학문에서는 더욱 그렇다.

 어린 시절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면 교사로 계신 부모님 덕분에 학교에 갔는데 특별히 나에게 문학적 소양을 쌓게 해 주신 분은 천등 이진호 박사님이시다. 그 분은 3학년 때 문예반을 맡아 우리들에게 글쓰기를 지도해 주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서 몇 째 안 갈 정도로 문단사에 빛나는 작가임을 성장해서 알았다. 그 분을 우연히 부모님을 통해 반나뵙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흔히들 문학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 등을 있는 그대로의 현실보다는 대상이나 소재를 주로 상상의 언어를 통해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한다. 다른 예술과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면 문학은 오로지 언어를 통해서만 표현되는 예술이다. 문학의 소재는 언어이며 그 언어를 조합해 조직화하는 것이 문학의 본질이다.

 진정한 문인이 되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은 평생학습이라고 생각된다.

 부모님께서 내려 주신“정화-마음을 고요하고 맑게 가지라”는 좌우명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주위를 아우르는 인생을 살자”라는 인생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러하기에 오늘도 수원문인협회에서 하루의 삶을 동료작가들과 함께 문학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 아울러 평생학습은 내게 있어 내 삶을 이끈 가장 큰 수레바퀴라고 자부하며 오늘도 나는 문학의 평생학습을 위해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