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 마을] 송호리 바닷가에서
2021-07-29 양성우 시인
나 차마 못 떠나겠네
비단같이 곱고 잔잔한 흰 바다, 뽀얗게 떠도는 물안개를 두고
나 차마 이 바닷가를 못 떠나겠네
서로들 마주보며 떠 있는 다소곳한 작은 섬들, 그 너머 저 멀리
둘러선 쪽빛의 산봉우리들을 어찌할꼬
보드라운 모래톱, 검푸른 솔밭, 긴 물결 부서지는 소리를 두고
나 못 떠나겠네
아무도 내 몸을 붙들지 않아도, 나 차마 못 떠나겠네
별처럼 찬연하게 깨꽃이 피고 고구마넝쿨 무성한 비탈밭
반짝이는 동백잎 배롱꽃 분홍꽃잎들을 두고 나 돌아가지 않으리
차라리 희부연 초승달 밑, 방파제 끝머리에 혼자 앉아서
내 오래된 슬픔을 내 손으로 누를까
나는 밀물에 떠밀려오는 바다풀인지도 몰라 지푸라기 나뭇가지
부스러기인지도 몰라
여태껏 한 치 앞을 모르고 살아왔으므로
내가 어딘가로 총총히 돌아가는 길, 거기에 또다시 덫이 있고
수렁이 있다면 그 무슨 인생인가
나 여기 떠나지 않으리
고즈넉한 산자락, 붉은 흙을 두껍게 다진 앞마당을 지나
호젓한 억새풀밭 엉겅퀴 꽃대궁 아래 두 손을 모으고 종일토록
저 흰 바다를 바라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