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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겸칼럼]어머니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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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겸칼럼]어머니의 힘
  • 정겸 시인·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 승인 2023.05.02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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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겸 (시인,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정겸 (시인,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입하(立夏)가 얼마 안 남았다. 24절기의 하나인 입하는 곡우와 소만 사이에 있는 일곱 번째 절기로써 봄이 농익어 가는 탓에 산과 들, 눈이 가는 곳마다 온통 초록빛으로 가득하다. 싱싱한 계절 못지않게 곡우 무렵에 뿌린 각 종 씨앗은 무럭무럭 잘 자라서 논과 밭에는 벌써부터 풍성한 결실을 예약해 놓은 기분이다.

수구초심이라 했던가. 나이를 먹을수록 고향이 그립고 옛날 뒷동산에 올라 함께 놀던 고향동무들이 보고 싶다. 이러한 노스탤지어는 마음속 감성을 끌어내어 시골집엘 자주가게 되고 주말을 맞아 찾아가는 고향의 정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먼 산에서는 멧비둘기와 꾀꼬리가 음파를 타듯 정답게 노래한다. 모처럼만에 느껴보는 평화롭고 한가한 5월 오후다. 구순을 넘긴 어머니는 지팡이를 잡을 힘도 없으면서 환갑 넘은 자식이 참비름나물을 좋아한다고 텃밭으로 엉금엉금 기어간다. 어디 그것뿐인가 입하 즈음에 먹는 쑥 떡은 보약 중에 보약이라며 쑥과 익모초를 먹어야 올 여름 더위 없이 건강하게 잘 넘긴다며 빈 광주리에 호미 들고 나선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어머니, 그 정도의 세월을 겪었으면 지금까지 행한 자식의 행동이 효자인지 불효자인지 판가름 났을 법 한데 별로 효자 노릇도 못한 자식을 위해 내리쬐는 땡볕을 고스란히 맞으면서 잡풀 무성한 고추 밭에서 참비름과 쑥을 뜯는다. 전통시장에 가면 몇 푼 안주고 살 수 있다고 소리를 지르며 만류를 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호미자루 거머쥐고 나물 캐는데 여념이 없다. 세월을 햇볕에 말린 지 한 세기가 다 되어 가는데 자식이 뭐라고, 왜 그렇게 희생만 하는지 그 이유를 아직까지 모르니 나는 아마도 철이 덜 든 것 같다.

나 역시 이제는 어엿한 한 가정을 꾸리고 자식들 출가까지 다 마친 가장임에도 나에게는 어머니 같이 자식들에게 베푸는 희생정신이 없어 가끔은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때가 있다.

우리나라의 오랜 풍습을 보면 집안에 사위가 오면 닭을 잡는다. 그것도 종자로 아끼는 씨암탉을 잡는다. 사위는 집안에서 가장 어렵고 귀한 백년손님이요 백년지객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어릴 때 시골에서 이런 풍습을 체험하고 자란 세대이다. 당시 어머니는 고모부가 오면 영락없이 닭을 잡았다. 여자로서 살생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그것도 항상 집 근처에서 알짱대며 알을 낳아주고 하루의 반찬거리를 공급해주는 닭, 두 눈을 멀뚱거리며 다니는 순하디 순한 닭을 잡을 때마다 고민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귀한 손님에 대한 예우와 가족의 건강을 위해 두 눈을 질끈 감고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 맷돌을 올려놓았다. 마지막까지 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날갯짓하며 발버둥치는 닭을 보며 어머니는 애써 외면했다. 여자의 신분으로 닭 한 마리 잡기가 참으로 어려웠을 법한데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오늘날까지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어머니가 살아 온 세월 속에는 수 만 보지락의 비와 수 만 자 높이의 눈을 맞으며 살아 왔음에도 어떤 괴력이 있기에 무서운 대자연과 맞서 자식들을 보호하며 살아 왔을까.​

삶에 있어 나이를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나이를 먹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어머니를 보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아름답고 자랑스럽게 생각된다. 특히 우리의 가슴을 울림으로 만들어 주는 요소는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끝도 없이 베푸는 휴머니즘적 철학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 시대의 어머니는 나이가 필요 없다. 병환에 시달리면서도 제 한 몸 챙기지 않고 정신이 혼미해질 때까지 자식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아마도 저승에 가서라도 오로지 자식 걱정만 할 것 같다.

그런데 정작 자식들은 어머니에게 무엇을 해 주었을까? 반성해 본다. 도심과 고향을 사이에 두고 어머니와 떨어져 살고 있는 지금, 지난 한 달 동안 어머니를 몇 번이나 찾아갔을까. 만약 찾아간 기억이 아련하다면 이번 어버이날 꼭 찾아뵙고 문안 인사드리며 따뜻한 저녁상 손수 차려서 올리는 것은 어떠한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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