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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호박꽃도 꽃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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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호박꽃도 꽃이더냐?
  • 김수기 수필가
  • 승인 2022.12.19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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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만의 가슴 속에 피는 꽃 무궁화.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울 밑에 봉선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속절없는 사랑의 나팔꽃.
낮은 수줍어 밤이 되면 피어나는 분꽃.
뒷동산 보름달이 밝게 미소 지을 때 녹색 치마에 너란 저고리를 입고 나타나는 기다림의 꽃 달맞이꽃.
엄동설한 칼바람 속에서 의연히 피어나는 의리의 꽃 매화.
임을 따라가다 해가 지면 돌아와 임을 기다리는 해바라기꽃 등등.

이렇게 꽃들은 그 꽃에 얽힌 사연도 많고 의미 또한 다양하건만 호박꽃 하면  생각나는 것이 ‘호박꽃도 꽃이더냐 쿵짜작 짝짝’구호이다. 「호박꽃은 꽃이 아니다.」라는 말인데 나는 꽃이 아닌 이 호박꽃이야말로 우리 서민을 대표하는 꽃 중의 꽃이라고 말하고 싶다. 황무지 아무 곳에서나 심어만 두면 잘 자라는 호박. 시골 두엄더미 가장자리에서, 측간 옆 울 밑에서, 돼지우리 옆에서, 호박은 두엄 냄새, 분뇨 냄새 등 온갖 역겨운 냄새를 감내해 가며 자라나 두엄더미를 덮고 담장을 덮는다.

꽃은 자웅동수로 한 줄기에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는데 벌과 나비가 날아들어 꽃가루받이를 해준다. 봄철 하얗게 피는 목련화에는 벌 나비가 날아들지 않는데, 유독 호박꽃에는 수많은 벌·나비들이 제집 드나들듯 하는가? 그 이유를   자세히 보면 누군가에게 소중한 것을 준다는 것이다. 호박꽃 속에는 향기 나는 꿀단지가 있는데 그  꿀을 먹기 위해 벌과 나비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맑은 가을 아침햇살이 호박꽃잎 속으로 스며들 때 호박꽃은 향기로운 모습으로 나팔을 불어 벌과 나비를 깨운다. 그러면 벌 나비들은 꿀을 빨기 위해 부지런히 수꽃과 암꽃 속을 드나들며 꽃가루를 다리나 날개에 묻혀 암꽃의 암술머리에 수꽃의 꽃가루(화분)를 떨어뜨려 꽃가루받이 즉 수분(受粉)을 돕는다. 이렇게 해서 꽃가루받이가 되면 방울토마토만한 호박 열매가 달걀만큼 커지고 달걀만한 것이 사과만큼 커지다가 드디어 수박만한 크기로 자라게 된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종족 보존을 위한 자연현상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을 것이요. 또 어떤 이는 공생 공존의 자연법칙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겠지만 필자는 내가 먼저 줄 때 남도 나를 도와준다는 놀라운 교훈을 얻는다. 
‘인격적으로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 말이다.
호박꽃이 비록 볼품이 없고 피는 곳 또한 누추한 곳일지라도 아름다운 향기를 가지고 있는 한 벌과 나비는 모일 것이요. 그렇게 되면 호박은 종족 보존의 의무를 다하면서 결코 외롭지 않은 생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호박은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존재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어린 호박을 애호박이라 하는데 아기 호박이란 뜻이다. 이러한 애호박이 어른 주먹만큼 커지면 그걸 따다 전도 부치고, 하얀 쌀뜨물에 된장 풀어 멸치 넣고  끓여 내면 그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귀한 손님이라도 오는 날엔 갈치조림으로  내어놓는데 갈치 맛도 맛이려니와 호박 살 속에 스며든 갈치 맛으로 인해 호박이 더 깊은 맛이 있다는 걸 먹어 본 사람만이 아는 비밀이다. 늙은 호박은 호박대로 죽을 쑤어 먹는다거나, 호박범벅이라 해서 나박나박 썬 호박에 쌀가루를 섞어 쪄내면 그 맛 또한 잊혀지지 않는 맛이다. 어머니께서는 몸의 부기를 빼는데 좋다며 호박을 한겨울 마당에 내어놓으셨다. 호박이 꽁꽁 얼면 따뜻한 방으로 가져와 구멍을 뚫어 놓아둔다. 그러면 노오란 호박물이 나오는데 이 호박 물에 꿀을 넣어 잘 저은 다음 병에 넣어 두시고 꾸준히 드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새롭다. 호박씨는 호박씨대로 온돌방 아랫목 왕골자리 밑에 넣어 말리면 바삭바삭 마르는데 그걸 형제들끼리 까서 먹던 기억도 클로즈업 되어 다가온다. 어디 그뿐이랴. 밥솥 뚜껑이 거품을 내며 들썩거릴 때쯤이면 깨끗이 씻은 호박잎을 양푼에 담아 솥뚜껑 열고 넣은 다음 뚜껑을 닫아 뜸을 들이면 알맞게 데쳐지는데, 여기에 밥 한술에 노오란 된장 그리고 그 위에 빨간 고추를 손으로 뚝 잘라 올려놓고 싸서 드시던 아버지의 모습 또한 그립다. 그래도 남으면 듬성듬성 썰어 여물과 섞어 소죽을 쑤어주면 황소가 우적우적 잘도 먹던 그 옛날 시골 풍경이 그리워지는 것은 시골 사람만이 갖고 있는 추억이리라.
이처럼 호박은 무엇 하나 버릴 것 없는 보배 같은 존재인데도 대우를 받지 못하였으니 어찌 애닲다 아니하리오. 호박 같은 세상 둥글둥글 살자. 둥근 것이 비단 호박뿐이겠느냐 마는 둥글둥글 살자는 뜻에는 잘ㆍ잘못을 묻어두고 그냥 대충대충 넘어가자는 뜻이 있는 것 같아 썩 내키지는 않지만 익어갈수록 겉과 속이 노란색으로 똑같은 호박이야말로 내가 본받아야 할 대상이며 스스로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며 말 없는 가르침을 주는 호박꽃이야말로 진정 나의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 과연 나는 호박과 같은 한결같은 마음과 호박꽃과 같은 아름다운 향기를 가지고 있는가? 진정 나는 지금까지 남을 위해 아름다운 향기를 풍긴 적이 있는가? 내 가족, 내 이웃, 내 친구, 그리고 내가 가르치는 제자들에게…….


김수기 수필가
김수기 수필가

1958년 전남 영광 출생
영광문협 회원
서석 문학회원2015< 수원문학> 신인상 수상수원문인협회 시낭송분과 차장
시집 『어머니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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