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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 이 ‘눌은 밥’이 따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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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 이 ‘눌은 밥’이 따뜻하네
  • 밝덩굴 시조시인
  • 승인 2022.12.05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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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 동문수학하는 학동이 있었다. 바로 옆집에 명수, 건너 편 집에 증이, 그리고 나를 묶어서 삼갱이라고 했다. 세 놈이 아침이면 누릉갱이를 들고 나와 자랑하며 먹었기 때문이다. 그 시대는 누룽갱이(누룽지)가 유일한 간식이었다.

삼갱은 서당을 다녔다. 한문(漢文)을 배우면서 잘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하늘 천 따지, 가마솥에 눌은 밥. 훈장은 서서 먹고 학동은 앉아 잡수시네.’ 이건 서당에서 공부할 때에 훈장이 잠깐 바깥에 나가면 불러대었다. 훈장을 놀리는 재미가 있었고, 악동들의 심심풀이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전절(前節)은 절대 바꾸지 않았는데, 후절만은 여러 형태로 바꾸어 불렀다. ‘~ 훈장은 똥개, 우린 복술강아지.’라든지, ‘~ 득득 긁어서 우리만 먹어야지.’ 같은 거였다.
명수와 증이는 벌써 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나는 이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막 울어대었다. “나 학교 갈 거야!” 사실 나는 우리가 불렀던 ‘훈장은 똥개’가 듣기 싫었다. 훈장이 바로 우리 아버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버진 당신 자식을 더 호되게 때렸다. 그래서 그 지옥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 삼갱은 다시 뭉쳤다. 초등학생이 된 것이다. 누룽지 먹는 것도 더 자유스러워졌다. 서당에 다닐 때의 누룽지도 다시 시작이 되었다. 삼갱의 누룽지는 다 달랐다. 증이는 쌀누릉지, 명수는 보리누릉지, 나는 콩누릉지였다. 이 각기 다른 누릉지 때문에 조금씩 서로 나누어 맛보는 재미, 그리고 더러는 뺏어 먹는 호기(豪氣)도 있었다.

쌀누릉지는 싼뜻하고 달콤한 고소, 보리누룽지는 창출을 씹는 한약 내, 콩누릉지는 첨부터 꼬소한 구수라고 말하면 어떨까? 여하간 안 먹으면 견디지 못 하는 은근한 배부름도 따라 와서 좋았다.

어느 날이었다. 증이가 누룽지를 못 가져 왔다. 나도 내 누룽지가 반제품이라 나누어 먹기가 싫었다. 혼자 한 입 베어 먹는가 했는데, 증이는 냅다 뛰어 저만치 내뺐다. 삐졌다. 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나누어 먹기로 했다. “야! 증이야! 여기 누릉지~”하고 소리쳤다. 증이는 이내 뒤돌아 뛰어와서 반을 나누어 주었다. 고마워하는 눈빛이 선했다. ‘누룽지’ 소리의 위력이 세다. 100미터나 앞에 갔었는데, 어느새 단숨에 왔으니 말이다. 사실, 이런 삐짐은 어제는 명수, 그저께는 나도 그랬다.

요새, 누릉지 음식이 많이 생겼다. 깡누릉지, 누릉지탕면, 누릉지사탕, 누릉지백숙, 누릉지강정, 누릉지아이스크림, 누릉지빙수, 누릉지치킨. 다 먹어보아도 그때의 누룽지 맛이 아니었다. 그때의 누룽지 음식형이 보이질 않는다. 그때의 재미난 낭만의 맛이 없어졌다.

누룽지는 가마솥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쌀을 일어 넣고 불을 때면, 위는 밥이 되고, 밑에서는 눌은 밥이 된다. 이것을 득득 긁어서, 그것도 엄마가 손을 호호 불면서 꼭꼭 뭉쳐 작은 공으로 만들고, 무명천으로 싸서 호주머니에 넣어준, 바로 그 누룽지가 진품이다.

   장작을 피워서
   가마솥 달구네

   윈 이팝꽃
   가운 경계미
   맨 바닥에선 눋고 있지

   흰 쌀이

   제 몸 태워서
   만든다네 누룽지.

눈이 많이 내린 날. 증이가 나를 불러 내렸다. “동네 축제를 하는데, 한 번 구경도 하고, 그리고 한마디 해 주어야지. 고향이 좋다는 게 무엔가. 내려오게나. 내 자네가 잘 방 불 때어 뜨뜻하게 해놓겠네. 이 사람아 ‘누룽지’ 생각나지 않나?”

나는 부랴부랴 삽다리역 예매를 하였다. 고향 산천을 보고 싶고, 증이 얼굴을 보고 싶고, 이야기를 하고 싶고, 잠긴 내 옛집의 대문 틈새로나마 서당을 보고 싶었다.

벌서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예산막걸리, 참개매운탕. 그것이면 술맛이잖나. 내가 상을 어른어른하니, 증이가 한마디 한다. “왜, 명수 생각나남!” 나도 싱겁게 중얼대었다. “하늘 갔으니, 여기서 찾는 거여.” 이미 삼갱은 멀리지만, 우리 두갱만으로도 실컷 웃어보았으면 좋겠다.

증이가 중대한 말을 한다고 했다. “여보게, 텁텁한 막걸리지만 많이 들게나. 그리고 조금 있으면 자네 ‘좋은 게’ 나올 걸세. 우리 집 사람이 그 음식을 잘하네. 기다리게.”
“응! 기다려? 이거 보다 더 좋은 음식이 무엔가?‘

“아, 이 사람아.  아직 저녁을 먹지 않았잖나?‘
저녁상이 들어왔다.  그런데, 어쩐지, 술을 마셨다고 그런가. 밥이 반 사발도 안 된다. 그런데, 그 다음 그림이 나를 뛰게 만들었다. 하얀 사발의 눌은 밥, 검은 동이 속에 동치미 세 조각이 슬그니 웃고 있었다.

아, 구수하구나. 이 누룽지 분태의 밥풀. 달콤한 누른 고소. 여기에다 동치미 한 입이 내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눌은 밥 한 술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여보게, 눌은 밥 반 그릇만으로도 반찬은 무용이라 했네. 그런데, 오늘은 호사했네. 내 이 숭늉도 한잔 마시겠네. 따뜻하네.”


밝덩굴 시조시인
밝덩굴 시조시인

박승훈 수필가 추천/1984~89한국수필 천료.

한국문인협회 경기지부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지냄   

경기중등교장. 법무연수원, 한경대 강사 지냄.

한글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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