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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천년초에 담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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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천년초에 담긴 세상
  • 수원문인협회장 정명희
  • 승인 2022.10.06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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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베란다 밖으로 가을이 왔다. 가을바람은 선선하고 하늘 높이 뜬 달은 그 어느 때보다 밝다. 나무 그림자 사이로 둥근 달을 닮은 가로등 불빛이 영롱하다. 불빛은 계단 같은 무늬를 내며 어디론가 긴 움직임을 하고 있다. 세워 둔 자동차 위로 때로는 보도블럭을 건너가며 본연의 힘을 내 쏟고 있다. 마치 말라가는 지구를 감싸 안기라도 하듯 최선을 다 해 있는 힘을 나누는 듯하다.

그가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지난 저녁부터 분주함을 못 본 체 하고 무심하려 애쓴 시간이 마른 가을의 낙엽처럼 기억의 늪으로 슬며시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아침을 차린다는 것은 늘 부담감이 도사리고 머리를 옥죈다. 아무 생각 없이 수십 년을 살았어도 그까짓아침쯤이야 쉬운 죽 먹기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다행히 전날 이 것 저 것 사다 놓은 반찬거리가 있어서 홀가분하게 준비를 하는데 불현 듯 그가 여행을 나서는 것이다. 늘 그랬듯이 그의 행동은 우발적이고 돌발적일 때가 많다. 누군가 그는 상남자라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장소도 시간도 그에게는 무의미하다. 어디 가느냐고 묻기 조차 어색하다. 그냥 가면 가는 것, 무료한 시간 속에서 탈출하는 것 그 자체가 용기이고 모험이다.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떠나는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막 집어넣은 찌개 속의 양파며 배추며 감자와 고기가 무색해진다. 누구를 위한 아침인가. 선뜻 식사 준비를 멈출 수 없어 잠시 주춤한다. 혼자서는 먹기 싫어 언제부턴가 아침을 걸렀다. 그가 명예퇴직을 한 다음부터 그와의 식사시간은 도저히 맞출 수가 없었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상을 차린다는 것 조차 진부하다. 이제부터는 차리던 식사 준비는 거꾸로 시간을 맞춘다. 다시 거두어들이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해 놓은 밥을 퍼서 식기에 담고 뚜껑을 덮어 포개 놓는다. 이내 곧 바로 냉장고 속으로 들여 놓는다. 찌개는 끓이던 것을 멈추고 뚜껑을 열어 식혀서 보관한다.

간식으로 사과와 참외조각을 주섬주섬 내 놓았던 것을 딤채 속으로 집어넣고는 얼마 전부터 먹고 있는 건강식품 몇 알과 오메가쓰리 두 알을 물과 함께 먹는다.

그가 가는 길을 내다 볼 생각도 있었지만 속수무책이다. 몸조심하라는 말은 언제부턴가 생략했다. 마음속의 기도를 그는 알겠지.

방으로 들어 와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았다. 잠시 시간 나는 순간을 만끽하고 싶어서.

휴〜하고 어깨를 뒤로 젖히며 의자 뒤로 깍지를 낀다. 시원하게 밀려오는 몸 안의 이완이 천천히 다가 온다. 다시 한 번 더 젖혔다 오므리며 고개를 돌리는데 눈길에 천년초 액기스 박스가 보인다.

참 그랬었지. 몇 년 전 쯤 그가 사무실에서 천년초 액기스를 만든다고 하며 간이 액즙기를 사 왔다. 천년초는 그야말로 천년을 산다고 하며 예로부터 내려 온 선인장과의 식물이다. 가시가 밖으로 나 있어서 다루기 힘든다. 그가 액기스를 만든다고 하면 따라가 볼 텐데 옆에서 거추장스러워 하는 표정이 부담스러워 외면해 버렸었다.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액기스 박스를 들고 와서 집 안 여기저기 쌓아 놓았다. 더러는 친구들에게 돌리고 더러는 몇 만원씩 가격을 정하여 팔기도 했다. 장사는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저 취미생활이나 할 거라고 생각했다.

몇 사람은 천년초의 효능을 알고 열심히 사 먹었고 나 역시 먹을까 말까 하다가 한 두 봉지를 먹어 보았다. 힘이 나는 듯도 했다. 이거 괜찮은데 싶어 이웃 지인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런데 탈이 나 버렸다. 지인은 그것을 먹고 토하고 설사를 해서 병원에 가서 링겔을 맞고 나서야 진정이 되었다. 한참 후에야 그 사건을 알고 얼마나 미안하고 부끄러웠는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 천년초 액기스를 만든 그에게 불똥을 튀겼다.

그 후 그 지인은 먹는 것을 멈추고 놀러 오는 사람들에게 몇 개 씩 나누어 주었는데 무슨 큰 보약인양 더 달라고 하며 보챈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다. 어디서 들었는지 천년초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몇 년 후 지인은 신장암이 생기고 지금은 폐암까지 전이 되어 요양 중이다. 그 때 그렇게 토하고 힘들었던 것은 아마도 미리 그의 건강을 챙겨 보라는 뜻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다.

하루가 지나고 밤이 다시 돌아 왔는데 그의 자취는 없다. 덩그러니 그가 내려 온 천년초 액기스만 그의 모습인 양 고즈넉하게 박스 속에 담겨 있다.

그래, 나만 남겨 두고 홀연히 여행을 떠나더니 그 동안 천년초 액기스 먹고 잘 기다리라는 거로구나. 위안을 하며 마음을 달랜다. 사실 하루 종일 그가 없는 홀가분함에 들 떠 안 먹던 술도 먹고 못 만났던 지인과의 회포도 풀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 왔지만 씁쓸한 외로움은 집 안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문득 그의 건강법에 탄복을 하며 천년초 한 봉지 꺼내 하루의 우울을 털어내 본다. 그래도 그가 내 곁에 있기에 이런 여유라도 즐기는 게 아닐까 감사하며.


출처 : 새수원신문(http://www.newsuw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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