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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문학광장] 겨울 아침에 온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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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문학광장] 겨울 아침에 온 손님
  • 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 승인 2021.12.03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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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올려다보는 하늘이 어둠침침하다. 이미 바람은 깃을 세우고 회전그네를 탈 준비를 끝냈는지 이리저리 시운전 중이다. 멀리서 생솔 타는 냄새가 끊어졌다 이어졌다 코끝을 간지럽힌다. 그 날 집에선 구들이 따스하게 온기를 데우고 들리지 않는 허리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아비는 기침소리로 방마다 아침이 오는 안부를 전하고 계셨다. 힘껏 눈꺼풀을 밀어 올려 문틈사이로 아버지의 모습을 읽었다.

"아니 벌써 ..."

 오늘 따라 아비는 가부좌를 트시고 수묵화에 빠져 계신다. 갑자기 나가서 아비의 그림에 무엇이 담겨지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갈까 말까 망설인 것은 아비의 시간을 침범하지 말아야 된다는 강박관념이었다.

 그래도 지켜봐야 할 것은 봐야한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살짝 문을 열고 나왔다. 아비는 어느새 눈치를 챘는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있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아침부터 그림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은 처음 뵈었기에 ‘참 낯설다’ 라고 생각을 했다.

 구순이 다 되어가는 연세에 흐트러짐 하나 없는 자세라니. 머리끝이 쭈빗 섰다. 누구에게 부탁을 받은 것일까 아님 도량을 닦으려고 저러실까. 헷갈렸다. 적어도 아비는 우리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섣불리 드러내지 않으시는 분이다. 평생을 살면서도 진지한 말씀은 한 번도 자식들에게 내비친 적이 없었다. 그저 몇 번의 사업에 힘들고 바빠하시는 모습과 낙담하는 마음을 어머니로부터 흘려 들은 적이 있을 뿐이다. 막연하게 아비가 많이 힘들겠다 생각만 들을 뿐, 그 분의 가슴 속에 박힌 돌은 얼마나 되고 슬픔의 단지는 얼마나 되는지 알려고도 여쭈어 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내 심정은 다르다. 아비가 걱정이 되고 아비의 행적에 자꾸만 관심이 쏠린다. 낯설음이란 이런 것 일까.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아비는 무탈한데 나 혼자만 걱정을 하는 것일까. 그래서인지 내가 평소에 못 본 아비의 행동에 자꾸만 의구심이 생긴다.

 아마도 나는 아비의 생활에 문외한이었던가 보다.

 내가 나오는 소리를 전혀 눈치 못 챘을 법도 한데 아비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는 것은 조용히 하라는 신호이며 자신의 상황에 대해 침묵하라는 것이리라.

 등 너머로 조용히 살펴보니 아비는 세필로 절탑의 모양을 글로 담아내고 계셨다. 아비는 대형글자도 잘 쓰시지만 작은 미세한 글자를 잘 쓰신다. 지금 아비는 불공드리는 심정으로 작은 글자들을 모으고 모아 절탑을 형상화하고 계신 것이다.

아비의 붓끝은 날렵하고 섬세해서 아비의 마음이 신선같지 않으면 절대로 그 절탑을 메울 수 없으리라.

 ‘괜히 일어나 나왔나.’

 후회도 앞섰지만 아비의 등 뒤에서 조용히 아비의 그림을 바라보았다.

 묘한 아비와 딸의 관계. 멀기도 하고 가깝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한 사이는 아비의 사업 이후부터였다. 어렸을 적 아비는 곧잘 나를 안아 주셨다. 아비의 팔이 나를 안아 번쩍 들을 때는 구름을 타는 것 같았다. 약간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그 높이는 아비만이 할 수 있는 나에 대한 배려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비는 내가 무척 사랑스러우셨던 것 같다. 어떤 때는 자랑스럽기까지 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아비는 한 번도 ‘사랑해’라고 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아비로부터 충분히 사랑을 받았다. 아니 받았다는 느낌이 든다. 무의식적으로 아비는 나를 인정하셨다. 나는 은연중에 그런 아비를 따르고 믿었다.

 아비의 그림은 어느덧 완성이 되어 가고 있었다.

 빼곡하게 글자로 채워져 간 절탑. 분명 무슨 의미를 두려고 저렇게 절탑에 글자를 그려넣고 있는 것이다. 잘 모르는 한자말로.

 이윽고 아비는 돌아보며 말을 건넸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니?”

의외였다.

 “바람이 부는듯해서요.”

 “그렇구나. 첫눈이 오려나 보다. 하늘도 꾸무레 하고”

 “산척 절 스님한테 가져다 주려고.”

 이미 아비의 절탑 그림글자는 몇 번이나 제작되어 산척에 있는 절에 가져다 준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왜 또. 아비의 삶에 대한 간절한 기도일까.

 어쩌면 아비는 어제 밤에 눈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을 설치셨을 것이다. 문득 아비는 절에 귀의하실 생각이든 것이리라.

 오로지 절탑그림 작품에만 집중하고 있으니. 안 여쭈어 보아도 안다. 이제 내 나이도 아비의 마음을 헤아릴 나이가 되었으니 말이다.

 문득 밖을 보니 첫눈이 소리 없이 내린다. 밖을 한 번보고 아비의 절탑그림을 보고 어느덧 나는 속으로 아비에게 간절히 말하고 있다.

 “아버지, 그 절탑그림 오래 오래 그리세요. 절대로 손 놓으면 안 되십니다.”

 내 마음을 아시는지 아비는 더욱 더 정성스레 절탑그림의 마지막을 향해 몰입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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