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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 마음의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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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 마음의 지팡이
  • 이인숙 수필가
  • 승인 2021.10.01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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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문학상 신인상, 한국작가 신인상,경기도문학상 작품상, 한국작가 이사, 경기도문인협회 홍보위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경기도문학상 신인상, 한국작가 신인상,경기도문학상 작품상, 한국작가 이사, 경기도문인협회 홍보위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뇌졸중으로 건강을 잃은 친정아버지를 얼마간 모시고 산 적이 있었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의 손과 발이 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한 날엔 병실 간이침대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곤 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면 온몸에 피로가 몰려와 끝없는 하품과 기지개가 켜졌다. 하지만 거동을 못 하는 아버지를 보며 힘든 내색조차 하지 못했다. 오랜 세월을 교육계에 종사하며 학생들을 위한 참교육에 앞장서 왔던 아버지였건만 중풍을 앓게 되면서 아버지의 모습은 변해갔다. 초점이 흐려진 퀭한 눈빛과 겨울날의 나뭇가지처럼 깡마른 팔과 다리가 내 눈에 이슬을 매달게 했다.

아버지의 고향은 황해도였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사랑을 흠뻑 받고 성장했다. 연꽃잎이 그득히 피어난 빨래터로 향하는 할머니를 따라나서면 할머니는 어린 아들(나의 아버지)에게 한 곡의 노래를 불러주셨다고 한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그로부터 ‘타향살이’라는 노래는 아버지의 애창곡이 되었다. 이렇듯 나는 아버지로부터 한편의 동화와도 같은 이야기들을 전해 듣곤 했다. 하지만 행복과 불행은 늘 공존한다고 했던가. 아버지에게도 불행은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세상을 떠나신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깊었다. 아버지는 늘 고향의 어머니를 그리워했고, 전쟁이 가져다준 상흔을 삭히며 살았다. 할머니의 제사일이 되면 묵묵히 할머니의 사진을 바라보다가 굵은 눈물을 떨어뜨리며 오열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가슴은 늘 그렇게 비워진 부모의 자리를 그리워했다. 안타까운 현실로 부모를 잃은 아버지는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자식 사랑을 우리에게 그대로 베푸셨다. 아버지는 언제나 훈훈한 자식사랑으로 우리의 가슴을 덥혀 주었다.

그러던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인해 오른쪽이 마비되고 간단한 말 한 마디 못하게 되었을 때, 나는 보았다. 세상의 어둠과 슬픔을 모두 짊어진 듯한 무거운 어깨와 망연자실 슬픔을 감당하고 있는 그 눈빛을……. 흰 중절모자를 쓰고 정갈한 옷차림으로 나들이를 다니던 아버지의 모습은 다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몸에 연결한 호스로 죽을 떠 넣어 드려야 하고 대소변도 보살펴야 했다. 게다가 아버지는 온종일 헛웃음을 웃었다. 시야가 흐려진 눈빛으로 ‘크윽큭 크윽큭’ 소리 내어 그것도 자지러지게 소리내며 웃었다. 그런데 그것은 웃는 것이 아니었다. 자율신경 조절이 되지 않아 숨이 차도록 헉헉대는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결코 우스울 일도, 즐거울 일도 없는 아버지의 무표정한 눈빛과는 달리 까맣게 말라버린 살갗만 웃고 있는, 그것은 바로 무심(無心)의 하회탈이었던 것이다. 소리는 나는데 눈은 울고 있는…….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효도를 한다고 내 나름의 방법으로 아버지를 대했다.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하면 가만히 계시라고 했고, 오로지 폐쇄된 집안에만 모셔 두었다. 햇빛이 맑은 한낮에도, 봄바람 부는 봄날에도……. 아버지의 움직임을 적게 하고 가만히만 있게 하는 것이 아버지를 편하게 하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아버지의 피멍이 든 얼굴을 보아야만 했다. 화장실 문을 연 순간, 아버지는 이미 숨이 멎은 상태였다. 아버지를 위해 화장실 바닥에 폭식한 스펀지를 깔고, 벽면엔 손으로 붙잡기 편하게 쇠봉을 설치해 놓았건만 아버지는 바로 그 쇠봉에 머리를 부딪혀 사망한 것이었다. 그 이후, 내 인생에 지울 수 없는 멍울을 안고 살아야 하는 불효녀가 되고 말았다는 죄책감에 떨어야 했다.

얼마 전부터 노인 간호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더욱 큰 후회가 밀려온다. 돌이켜보면 아버지를 슬프게 한 건 거동 못하는 몸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컸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노인의 건강문제를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있는 요즈음, 진작에 이런 공부를 했더라면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노인질환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고, 아버지보다 더 힘들게 병마와 부딪혀 사는 사람도 있는 위로의 말을 해 드렸을 텐데……. 아버지에 대한 효도랍시고 아버지를 제약된 공간 속에서 어쩌면 방치라고 해도 좋을 불효를 저지른 것만 같다. 노인과 관련된 기본적 개념과 특성에 대해 무지했던 결과라는 것을 공부를 하면서 깨닫는다. 노인에게 있어 단순한 육체적 생존만이 생활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음이 가슴 아프다. 노인에게 경제적 측면, 사회적 측면 등만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정신적 측면에서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해야 함을 뒤늦게 알았다.

이제는 쓸쓸히 먼 바람소리로만 들을 수 있고, 하늘의 흐린 별빛으로만 회상할 수 있는 아버지, 유언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떠나신 아버지……. 당신의 몸의 변화를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던 아버지는 얼마나 적적한 하루하루를 침묵으로 견뎌 내셨을까. 단 한 번도 노인 복지관에 모시고 가지 못한 후회감에 울음이 터질 것만 같다. 아버지에게 다른 분들과 어울리게 하여 위안이 되게 해 드렸다면 아버지의 그 슬픈 헛웃음이 줄어들 수도 있었을 것을…….

햇살이 따갑게 내리는 여름날이면 녹색의 버드나무 늘어진 냇가에서 ‘타향살이’를 부르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어린다. 아버지 생전에 걸음을 도와준 지팡이는 되었을지언정 아버지의 설움을 지탱해주는 마음의 지팡이가 되어 드리지 못한 불효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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