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B
    13℃
    미세먼지 보통
  • 경기
    B
    11℃
    미세먼지 보통
  • 인천
    B
    10℃
    미세먼지 보통
  • 광주
    B
    15℃
    미세먼지 보통
  • 대전
    B
    14℃
    미세먼지 보통
  • 대구
    B
    14℃
    미세먼지 보통
  • 울산
    B
    9℃
    미세먼지 좋음
  • 부산
    B
    10℃
    미세먼지 보통
  • 강원
    B
    14℃
    미세먼지 좋음
  • 충북
    B
    13℃
    미세먼지 보통
  • 충남
    B
    14℃
    미세먼지 보통
  • 전북
    B
    13℃
    미세먼지 보통
  • 전남
    B
    12℃
    미세먼지 보통
  • 경북
    B
    14℃
    미세먼지 보통
  • 경남
    B
    14℃
    미세먼지 보통
  • 제주
    B
    11℃
    미세먼지 보통
  • 세종
    B
    14℃
    미세먼지 보통
[아침에 읽는 수필] 스러지는 물꽃, 멀어지는 풍광
상태바
[아침에 읽는 수필] 스러지는 물꽃, 멀어지는 풍광
  • 채찬석 수필가
  • 승인 2021.02.23 12: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친께서 직장암으로 세상 뜨시기 한 달 전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시냐고 여쭈어 보았다. 있다면 모셔와 먼 길 떠나시기 전에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대답은 의외로 “없다”이셨다. “보고 싶은 여자, 생각나는 여자도 없습니까?” 했더니 “푸!” 하고 웃으시곤, 없다고 하셨다. ‘그게 정말일까?’ 그때 나는 반신반의했다. 

92세의 어머니는 요양원에서 하루를 거의 누워 지내신다. 음식을 삼키지 못하시어 콧 줄로 음식물을 주입해 드리고 있으니 사는 게 아니라 연명하실 뿐이다. 코로나 때문에 작년 2월부터 면회가 안 되어 유리창으로 몇 차례 인사만 드리고 왔다. 

재작년, 어머니께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고 여쭈어 보았다. 잡수시고 싶은 것을 물었을 때처럼 “없다” 며 고개를 가로저으셨다. 10년 전만해도 스무 살 시절에 한 마을 살던 동네 친구가 보고 싶다 하셨다. 그런데 그분은 고향이 북한이었는데 고향에 가고 싶다는 말을 몇 번 하더니 어느 날 마을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삼팔선을 넘어 고향으로 갔는지 그 뒤로 다시는 보지 못했고, 소식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여자는 조그만 옴팡집에서 다리를 저는 남편과 살았다. 남편은 직장도 없고 농토도 없어 장날에 장에 나가 거간일로 조금씩 돈을 벌어 쓰는 정도였다. 남편은 투전의 도사라서 그 여자를 노름으로 따왔다 한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제 그 여자도 잊으셨나 보다. 

기억이나 체력이 지금보다 좀 나았던 재작년 어느 날, 어머니께서 뜬금없는 말씀을 하셨다. “아, 글쎄, 네 아버지와 결혼하기 전 나와 결혼하려고 열나게 찾아오던 그 사람이 며칠 전에 찾아왔더라.” 어머니로부터 처음 들은 이야기라서 몇 가지를 여쭈었더니 실감나게 말씀하셨다. 아버지와 결혼하기 전이라고 하시어 왜 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느냐고 여쭈니 그 남자가 가난해서 그랬다고 답하셨다. 75년도 더 지난 일인데 어찌된 일이었을까? 아! 어머니에게 그런 아련한 추억이 있었단 말인가? 어떻게 그 아득한 기억이 살아나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을까?  

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20년이 지났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는데 “네 아버지 일 나가 아직 안 들어오셨다.”는 등 엉뚱한 말씀도 하셨다. 아버지 돌아가신지 오래 되었다고 알려드렸을 때, 눈물 콧물 슬프게 흘리셨는데 자꾸 잊으셨다. 그 뒤로는 아버지 살아계신 것처럼 대화하고 말았다. 

옛날, 아주 오래 전 짝사랑하던 연인이 보고 싶어 어려움을 무릅쓰고 찾아갔는데,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들었다면 얼마나 허망할까. 만나면 하고 싶었던 말 한마디가 가슴 속에 응어리로 남아 있는데 들어줄 사람이 없으니 그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상 떠나기 전, 한번 만나 그리움으로 잠 못 들었던 옛이야기 하나라도 들려 줄 수 있다면, 솟구치는 분수처럼 얼마나 시원하랴! 간절한 그리움이란 조개가 연한 조갯살로 모래를 갈고 가는 아픔 같은 것, 그 상처로 만들어진 게 진주다. 그리움이란 사리처럼 황홀한 열병이 빚은 보석이다. 그렇게 맺힌 마음을 이슬 떨어뜨리듯, 건네고 떠날 수 있다면 떠나는 이의 마음이 얼마나 평온해지랴. 혈기도 나이가 지긋해지면 깊은 산속 옹달샘처럼 고요히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물끄러미 보거나, 파란 하늘이나 우러를 테니…. 

산다는 건 벚꽃 잎이 흩어지듯, 철새가 날아가듯, 흘러가는 구름처럼 언젠가는 사라져갈 헤어짐. 만났다 헤어지며 다시 또 만나자고 손잡고 흔들며 돌아서는 것이 평범한 인생사. 배를 타고 맨 뒤에서 바다를 보면 무수히 피어났다 스러지는 하얀 물꽃들…. 그리고 아스라이 멀어지는 풍광을 보며 떠나는 것이 인생이란 말인가. 

 

채찬석 수필가
채찬석 수필가

전북 군산 출생. 교육수필가, 전 연무중학교 교장
1986년 평론 ‘이원수 동화의 현실대응양상’으로 신인상 수상
전 '아동문학평론' 편집위원 및 현대아동문학회, 군포문인협회 회원 활동
청소년 교육을 위한 수필을 주로 씀
수필집 :『꿈을 위한 서곡』, 『친구야!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니』, 『자녀의 성공은 만들어진다』,『나는 사람을 발견한다』
‘자랑스런 수원문학인상’ 수상

 

이준호 화가
이준호 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