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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진선 양평군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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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진선 양평군의회 의장
  • 대담=김인종 편집위원장/ 글=김동초 대기자
  • 승인 2021.02.08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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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집행부 소통 통해 주민들 우선시하는 의장으로 최선 다할터”
전진선 양평군의회 의장이 인터뷰에서 2021년 의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진선 양평군의회 의장이 인터뷰에서 2021년 의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진선’ 양평군의회 의장의 이력이 참으로 독특했다. 군의원이라면 지방자치단체 가장 일선 조직의 모세혈관 같은 정치인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최 일선에서 지역주민들과 호흡을 같이 하는 기초정치인을 뜻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군의원이나 시의원들은 그 고장에서 평범한 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친근하게 살아온 이웃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런 현상이 어찌 보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그 마을의 이장이나 지역사업가, 또는 봉사단체 출신의 인물들이 그 지역정서를 가장 잘 알고 주민들의 아쉬움과 희망을 잘 풀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진선 양평군의회 의장은 전국 지자체 도시들의 경찰서장을 두루 역임한 인물이다. 공직생활 말년에는 고향인 양평과 인근인 여주 경찰서장을 지내기도 했다. 옛날에는 경찰서장이 그 마을의 군수나 시장과 같은 반열로 대접을 받았다. 아무튼 기초의원의 이력으로는 차고도 넘치며 그런 정치신념에 찬사를 보낼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인터뷰 전 인터넷을 통해 확인된 그의 약력에서 잘못된 정보인가 하는 의구심에 몇 번을 다시 체크하기까지 했지만 양평군의회 의장 ‘전진선’은 바른 정보였다. 여태껏 진행해온 수많은 인물들 중 가장 궁금증을 한 아름 안고 시작하는 인터뷰였다.

의장실 초입에서 환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반갑게 우리를 맞이하는 준수한 인물의 전진선 양평군의장은 균형이 잘 갖춰진 몸매에 무신과 문신의 조화가 잘 어울리는 타입의 훤칠한 인물이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마치 이순신 장군의 풍모도 살짝 풍기며 지적이미지 또한 예사롭지 않음을 느끼게 해준 인물이었다. 

전 의장은 1959년 12월 17일 양평군 지평면 망미리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고 했다. 중농 수준의 농사를 짓던 집안에서 자라나 그는 지평초와 지평중을 거쳐 인천에 있는 인하부고(4회)로 유학의 길을 떠났다고 했다. 1순위는 역시 서울이었으나 당시 서울의 유학길은 제도적으로 차단되었기에 인천을 택했다고 한다. 

외할머니가 인천으로 올라와 자신의 수발을 해주셨다며 그때를 그리워하는 순수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주안역 뒤에 도화시장 쪽 ‘부추 밭’ 단지의 원예농업장이 있던 곳이라고 했다. 그렇게 할머니와 고등학교시절 3년을 인천 주안에서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청소년기를 보내고 대학은 서울 퇴계로에 있던 동국대 경찰행정학과에 진학, 드디어 민중의 지팡이였던 경찰계로 진출하는 꿈을 이룰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전농동에 있던 친척집에서 기거하며 대학생활을 이어갔고 3학년 때 유네스코학생회인 ‘쿠사’에 가입하며 왕성한 활동을 통해 학창시절을 보람차게 이어갔다고 했다. 그리고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임진강 근처에 있던 9사단 오두산 전망대에서 군복무를 마쳤다고 했다. 

전 의장은 복학 후 경찰간부후보생시험에 합격, 부평종합학교에서 일 년 교육을 수료한 후  27세 때인 1986년 4월 8일, 강원도 강릉경찰서 대공과(창설) 대공계장으로 발령(경위)이 났다고 했다. 주 업무는 옥계와 강릉을 포함한 탄광촌 등에서 납북어부들의 귀환 時 교화 작업과 광부들이 북한 간첩들에게 포섭되는 걸 방지하기 위한 교육실시가 주 임무로 6개월 간 근무 후 강릉경포파출소장으로 발령이 났다고 했다. 

그곳에서 1년 근무를 마치고 1988년 7월에 서울의 치안본부로 들어와 치안본부장의 직인을 맡아 문서발송 時 직인작업을 했다고 한다. 상당히 중요한 직책으로 권한과 책임이 막중했던 시절이라고 전 의장은 회고했다. 

이때 수많은 문서를 취급하면서 중요한 경찰업무의 근간을 파악 할 수 있었고 자신의 업무 향상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1년 후 1989년 9월, 외사국으로 발령, 공항에서 대테러 방지를 위한 검색(X-RAY, 탐지·검색) 등의 업무를 맡았다고 했다. 

그리고 경감으로 승진, 전남 경찰청 외사계장으로 발령, 1년 반을 근무하고 서울송파경찰서 수사과 조사계장으로 발령이 났다고 했다. 이어 정보계장 근무를 거쳐 2000년 경찰청 외사국으로 발령, 서무반장(예산·인사)을 맡았다고 했다. 

경찰외사국은 경찰외교의 분수령이며 외국주제 대한민국경찰들의 인원조정과 외국경찰청장들과의 교류(MOU)를 담당하는 국제적인 부서라고 했다. 2000년엔 한·중·일·러 경찰청장 회의 등을 계획하고 수행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승진 후 인천경찰보안계장으로 발령을 받고 근무를 시작했다고 했다. 당시 인천은 대공 보안 쪽으로 가장 사건이 많은 곳이었으며 업무강도 또한 높은 곳이었다고 회상했다. 

전 의장은 2004년 노무현 정부시절은 전교조 활동과 금강산 관광 등이 붐을 일며 대공업무의 역량유지가 절실했고 관계자들의 심리 위축이 심했던 시절이었다고 기억했다. 

그 후 부평경찰서 보안과장으로 발령, 대우자동차집회 등의 사건들을 다뤘고 2005년 동대문에 있던 서울 기동단 행정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했다. 그곳에서 ‘대추리사건’이라 불리워진 평택미군기지 이전 반대시위사건 등을 처리하며 2006년 경찰청 외사국으로 다시 복귀했다고 했다. 

그곳에서 해외 경찰에 관한 외교관 역할의 영사업무를 담당하며 외국주재 경찰들과 긴밀한 협조를 통해 업무에 최선을 다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드디어 2011년 총경(경찰서장)으로 승진 6개월 교육을 마치고 충북영동경찰서장으로 발령이 났다고 한다. 

영동 횡간은 금강 상류지역으로 경부고속도로의 중간지점으로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지역적으로는 김천·무주·옥천 사이지역으로 추풍령고개가 있는 곳이라고 했다. 

영동경찰서장으로의 근무가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까닭은 그곳이 양평과 비슷한 정서를 가진 곳이어서 특별히 애정이 갔다고 했다. 

전 의장은 경찰서장 임용 전 교육을 받을 당시 다산의 생가였던 남양주시 조안면에서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감명을 받았으며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실천하는 관리가 되고 싶었다고 술회했다. 그래서 영동경찰서장을 할 때 목민심서에 기반 한 경찰행정을 펼치고자 최선을 다했고 그 애정과 노력의 기억이 남다르다고 했다.

당시 검찰지청장들과의 교류는 물론 다수의 민간인 행사에도 초청 되 많은 추억을 쌓았던 곳이라며 그 당시를 회상하는 모습에선 얼굴에 미소가 어리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2014년 1월 박근혜 정부시절, 전 의장은 인천 국제신공항 경찰대장으로 발령, 1년 반 근무 후 원하는 대로 드디어 2015년 7월에 고향인 양평경찰서장으로 발령이 나며 40년 만에 ‘금의환향(錦衣還鄕)’을 하게 되었다고 술회했다. 

전 의장은 고향인 양평에서 경찰서장을 지내며 청소년선도와 방범 등 치안은 물론 지역봉사활동에 최선을 다했고 특히 노인들의 사망사고와 관련, 야광조끼 배포와 교육 양성화를 통한 면허증 발급 등을 실시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선행이 정치적으로 오해를 받아 2016년 3월에는 뉴스전문체널인 OOO은 물론 여러 언론에서 대서특필이 되며 3개월 동안 대기 발령을 받기도 했다고 당시의 아픔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 후 인천청 경무과장으로 발령, 1년 근무 후 2017년 7월 다시 여주 경찰서장으로 부임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곳에서도 노인들의 안전을 위해 교통정책을 펼쳤고 드디어 2018년 2월 9일, 45년간의 경찰공무원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해 치러진 지방선거 군수경선에 도전, 경쟁자와 후보 자리를 놓고 겨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해 탈당 후 무소속으로 2018년 6·13지방선거에서 제8대 군의원에 도전, 당선이 되었다고 했다. 이어 미래통합당 재입당을 통해 ‘보수대통합’의 가치를 내걸고 최선을 다해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했다. 

2020년 7월에는 후반기의장에 취임 한 후 현재까지 양평군의회 의장직을 재임하고 있다고 술회했다. 전진선 양평군의회 의장은 인생자체가 ‘공직의 길’인 인물이었다. 그의 길고 긴 ‘민중의 지팡이’ 역할이 이젠 민생 최일선에서 주민들의 민원을 챙기며 보다 큰 세상에서 훨훨 날수 있는 ‘비상(飛翔)’을 준비 중인 인물로 보였다. 

1시간을 훌쩍 넘긴 인터뷰가 짧게만 느껴졌고 군민들을 위해 정말로 감동적인 삶을 살아온 한 사람의 인생스토리에 흠뻑 빠진 시간이었다. 

 

양평군 코로나 방역 성공은 방역지침 적극 따라준 군민들 헌신 때문 

‘복지·농촌체험’ 집행부와 유기적 협력…군민 생활안정에 만전 기해

2021년 군의회 최초 ‘의정자문단’ 운영…군민 눈높이 맞는 의정 실천

 

문. 신축년 새해 양평군의회개원 30주년이 갖는 의미는?

1991년 4월 15일 초대 양평군의회를 출범을 시작으로 현재 제8대 군 의회에 이르기까지 어느덧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특히 이번 2021년은 양평군의회 개원 30주년을 맞이하는 해로서, 지난 30년간의 의정활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30년사 발간을 통해 그간의 성과를 군민에게 알리고, 군민을 위한 의회 역할에 대한 방향 설정과 미래상을 정립하는 해입니다.

또한 32년 만에 개정된 「지방자치법」을 토대로 새로운 자치 환경과 주민 주권강화, 지역중심의 자치분권 추진으로 우리군 만의 특색을 살린, 우리군민을 위한 진정한 자치분권을 실현하는 원년의 해로 삼고 새로운 지방자치 시대를 준비하겠습니다.

문. 의장님 생각하시는 집행부와의 가장 바람직한 관계란?

집행부는 법을 근거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곳인 반면 의회는 이러한 집행부의 행정 서비스가 공정성·효과성·적법성 등의 측면에서 올바르게 실현이 되고 있는지 감독, 비판, 통제 등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비록 두 기관의 역할은 다르지만, 의회와 집행부는 상호 간 견제·균형을 유지하고 소통과 협력을 통해 군민의 행복실현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갖고 함께 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작년에 이어 지금까지 군수와 여섯 차례의 정례 간담회 시간을 가졌고, 금년도에도 매월 정기 간담회를 통해 지역현안 등을 나누는 소통의 시간 갖을 계획으로 앞으로도 양평군 발전을 위해 상호 협력하는 기관이 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문. 코로나 대 확산 속에 양평군이 성공적인 방역을 펼치며 선전하는 원인은?

작년 한 해는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하여 대한민국 뿐 아니라 전 세계가 많은 피해가 있었습니다. 우리 양평군 또한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사례와 관내 지역경제침체 등으로 사람과 지역경제 모두가 어려워지는 시기를 보냈습니다. 이러한 위기상황을 잘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생활 속 마스크쓰기, 거리두기 등 정부 방역지침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준 군민분들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함께 양평군의회도 재난기본소득지급을 위한 조례 제정 및 코로나19 관련 예산 편성을 위한 원 포인트 임시회 개최 등 군민 생활안정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였으며, 집행부 또한 주민안전·보건·지역경제 안정을 위한 적극적인 방안대책을 수립하였습니다. 위와 같이 우리 양평군민과 군의회, 군집행부 모두의 노력을 통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문. 포스트코로나 대비 양평군의회가 가장 역점을 두는 사안이라면?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을 포함한 모든 군민의 평범한 일상을 되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우리군의회에서는 “복지”와 “농촌체험” 두 분야에 대한 포스트 코로나19 뉴노멀 시대 정책방향에 대한 연구용역을 추진 중으로 결과물 산출 시 집행부와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군민의 생활안정에 만전을 기할 계획입니다.

문. 제8대 의회에서 최초로 운영하는 ‘의정자문단’이란?

2021년도에는 양평군의회 최초로 ‘의정자문단’을 운영합니다. 의정자문단이란 주민자치, 행정, 문화, 복지 등 각 분야별 전문가들을 구성·운영하여 의정 전문성을 제고하고, 의정 현안과 주요 군정에 대한 자문과 정책제안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러한 의정자문단 활동을 통하여 보다 객관적이고 능률적인 의정활동을 추진할 예정이며, 군민 눈높이에 맞는 맞춤 의정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운영계획은 연 2회 정기회를 개최하고, 필요 시 임시회를 개최하여 탄력적으로 운영해나갈 예정입니다. 

문. 의장님의 가족사와 좌우명이 있으시다면?

제 아내도 저와 같은 경찰공무원 출신으로 성북경찰서에서 근무를 했었습니다. 제가 부평에서 교육을 받을 때 집사람과 인연이 되었고 제가 강릉경찰서에 근무할 당시 결혼식을 올려 삼선교 근처인 동소문동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마련해 준 참으로 고마운 정인이며 가족을 위한 그간의 희생에 대해 늘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안고 삽니다. 그리고 자녀는 딸과 아들이 하나 씩 있습니다. 큰 딸은 좋은 배필을 만나 가정을 꾸려 제게 세상의 제일 큰 보물인 외 손주(17개월)를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씩씩하게 군 생활 중에 있습니다. 모두 건강하고 착하게 잘 자라주어 이 또한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좌우명 이라면 “최선을 다하자”입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결과에 크게 연연하지 않아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의회와 집행부 간 원활한 소통을 통해 주민들을 우선시 하는 의장으로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어떤 자리에 오를 지라도 늘 초심을 잊지 않고 지역발전과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혼신을 다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힘든 주민들을 위해 의회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의회가 앞장서겠습니다. 다시 한 번 군민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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