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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칠보산 소경(所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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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칠보산 소경(所景)
  • 박도열
  • 승인 2021.02.04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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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열
박도열

휴일 아침. 은빛 물안개가 산기슭에 걸려 있다. 금방이라도 비를 내릴듯하다. 자전거를 끌고 집 근처 둘레길을 나섰다.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 사는 탓에 또 다른 혜택도 주어진다.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칠보산 기슭에 모 대학 학술림이 널따랗게 조성되어 있다.
자전거를 타고 솔밭 사잇길을 달리는 기분이란, 꼭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그 길을 벗어나 트레킹코스인 둘레길로 접어들었다. 솔향기가 가슴 속으로 시원하게 들어왔다. 숲은 온통 꽃 천지, 연분홍빛의 진달래꽃, 분분히 떨어지는 벚꽃, 약간 경사진 곳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조팝나무꽃이 반겨주듯 만개해 있다.

계곡물이 고이는 약간 넓은 평지에 미나리꽝이 있다. 고향을 떠난 후로 오랜만에 보는 미나리 밭이다. 시골에 살 때는 미나리 밭이 지천으로 널려있었는데, 봄비가 촉촉이 내리기 시작한다. 능실마을을 지나 숲길을 달리다 어느 승마장에서 말을 타는 모습을 본 뒤에 방향을 돌렸다. 돌아오는 길 텃밭 입구에 누군가 박스쪼가리에 아무렇게나 휘갈겨 놓은 글씨가 눈에 띄었다.

내 닭망 훔쳐간  XX 야, 걸리면 그동안 잃어버린것까지 다물린다.
그 밑에 또,
돼지감자 캐간 XX야, 캤으면 땅이라도 묻어놔야지,

삐뚤빼뚤 써 놓은 글을 보며 실소를 금치 못한다. 오죽했으면 그렇게라도 분풀이를 하고 싶었을까. 빗줄기가 점점 더 굵어지자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집으로 향했다.

저녁을 먹고 집 둘레를 천천히 걸었다. 어둠이 내린 화단에 잔망스런 아이가 소금을 뿌려놓은 듯 희끗희끗하다. 전지(剪枝)가 된 나뭇가지에 옹기종기 앙증맞게 붙어 있는 흰꽃. 꽃잎이 좁쌀을 튀겨놓은 듯 붙여진 조팝나무꽃이다. 한낮에는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 화려한 꽃들에 가려있다가, 어둠이 내리면 자신의 존재를 서서히 드러내는 꽃. 따사로운 봄볕이 나른한 날이면 언덕이나 산기슭에 피어나는 소박하고 단아한 꽃. 달빛 쏟아지는 밤이면 백설보다 더 희고 눈부시게 꽃등을 밤새 켜두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함박눈이 내린 것처럼 피는 꽃이라 해서 설유화(雪柳花)라고도 부른다. 

조팝나무가 꽃을 피울 때면 부지런한 농부들은 못자리를 하고, 먼 산의 뻐꾸기도 울음을 지친다. 이 꽃에도 전설이 서려 있다. 수선이라는 효녀가 전쟁터에 끌려간 아버지를 찾다가, 전사한 아버지 무덤가에 자란 어린나무를 정성껏 뒤란에 옮겨 심었다고 한다. 그 후 아버지가 돌아온다던 매년 봄이면 집 뒤란에서 하얀 슬픔을 머금고 화사하게 피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봄은 찬란하면서도 슬프다고 했던가.

삶에 지친 이들에게 봄볕 따스한 햇살을 내려주고픈 날. 화단 앞에 슬픈 눈망울로 서 있는 어린아이의 조막손에 꽃씨가 든 봉투를 안겨주고픈 날. 막 세수를 하고 나온 해맑은 아이를 닮은 연두색 꽃씨를 건네주고픈 날. <어떤 봄날>

마음이 꽃처럼 아름다운 사람에게는 은은한 향기가 풍겨오고, 마음이 햇살처럼 포근한 사람에게선 온기가 느껴진다. 생각이 물처럼 맑은 사람에게선 시냇물 소리가 들려오고, 생각이 숲처럼 고요한 사람에게선 청아한 새소리가 들려온다. 봄은, 우리에게 한 걸음 느리게 걸으라 하고 찬찬히 바라보라 한다, 그리고 자연의 소리에 한층 귀를 기울여 보라 한다. (2017. 봄)

코로나 19에 힘든 시간을 버텨온 많은 이들에게 올해의 봄은 어느 해보다 벅찬 감동으로 다가오는 봄날이었으면 싶다.

『칠보산 소경(所景)』
『칠보산 소경(所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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