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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 첫 가정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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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 첫 가정 방문
  • 서순석 시인
  • 승인 2021.01.24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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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순석 시인
서순석 시인

누구에게나 첫 경험은 뇌리에 오래 남게 마련이다. 내 경우는 교직에 몸 담고 첫 가정 가정 방문이 그렇다. 그러니까 교직 생활 첫해인 1982년 26세 때 이야기다.

첫 부임지는 지금은 도시지만 그 당시 읍이었던 경기도 안성이었다. 서울이 고향인 나는 한 번도 객지생활을 한 적이 없어 모든 것이 낯설었다. 고속버스에서 내렸을 때 처음 눈에 띈 것은 상점 전화번호였다. 전화번호가 국번 없이 네 자리였다. 국번 없는 전화번호를 처음 본 것이었다. 학교에 부임해 보니 당시 30여 명이 넘는 교무실에 전화기는 교감 선생님 책상에 딱 한 대였다. 읍을 벗어나 외지에 전화를 하려면 교환을 통해서 해야했던 시절이었다. 학생이 결석이라도 할라치면 당시 마을 이장님 댁에 교환을 통해 전화를 하면 이장님이 마이크로 학부모에게 연락을 해야 통화가 가능했다.
 
부임 첫해 봄 내가 담임을 맡고 있던 학생이 결석을 했다. 교환을 통해 전화를 해서 알아보니 상을 당한 것이었다. 가뜩이나 모든 것이 첫 경험이라 긴장하고 있던 시기에 문상 하는 것도 처음이라 경험 많으신 선배 선생님에게 자세한 절차를 숙지한 다음에 학생 집에 문상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교통편이었다. 지금이야 차가 흔하지만 그 때는 자전거만 새로 사도 모든 교사가 구경하러 나오던 시절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퇴근 후 저녁 때 자전거를 타고 출발하였다. 아무래도 버스가 일찍 끊어질 것 같아 자전거로 다녀오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지금 기억에 보개면 기좌리라고 하는 곳이었는데 지금도 논농사를 짓고 있는 곳이다. 

검은 색 정장을 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자전거로 출발하였다. 마을 어귀에 도착해서 보니 논을 가로질러 가는 것이 지름길인 것 같아 아무 생각없이 논둑으로 진입했다. 마침 모내기 철이라 논마다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석양 무렵 논 풍경을 감상하면서 페달을 밟았다. 가운데 쯤 가다보니 이게 웬 일! 논둑 길이 딱 끊기고 물꼬가 있는게 아닌가. 알다시피 논둑은 좁아서 발 디딜 공간이 전혀 없었다. 선택지는 딱 두 가지였다. 계속 가든가 아니면 옆으로 쓰러지든가 둘 중 하나였다. 꼼짝없이 그대로 자전거를 탄 채로 모를 낸 진흙탕 논으로 쓰러지는 수 밖에 없었다. 마침 주변에 아무도 없어 자전거를 끌고 근처 야산으로 들어가 양복을 벗어 물에 행궈 진흙을 씻어내고 물기가 마를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옷에서 개구리만 안 나왔지 혼자 생각해도 가가 차서 웃음밖에 안 나왔다. 그러나 야산 봄 저녁은 매우 추웠다. 다시 옷을 주섬주섬 입고 학생 집에 들어가니 온 마을 사람들이 선생님 오셨다고 깍듯이 예우해서 맞아주었데 왜 그렇게 옷이 젖었냐고 물어 자전거 타고 오느라고 땀이라고 둘러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상을 마치고 출발하려고 하니 그냥 가는게 아니라고 하시며 제일 아랫목 상석에 저녁상을 마련해놓았다. 그런데 혹시 고봉밥이라고 들어보았는지 모르겠다. 안성은 유기로 유명한 곳이다. 옛날 밥그릇은 그 크기가 지금보다 훨씬 크다. 그 큰 놋그릇에 밥을 산으로 만들어서 앞에 놓는 것이 아닌가. 출발 전에 먹은 저녁도 있고 해서 좀 덜려고 하니 이런 곳에 오시면 다 드시는 것이라고 그 집안 어른께서 말씀하셔서 덜지도 못하고 긴장 속에 그 많은 밥을 다 먹을 수밖에 없었다.

평생 그렇게 많은 밥을 먹어본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귀가 후 아무래도 속이 안 좋아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소화제를 물었더니 아마 소화제일거라고 그러시면서 하얀 가루를 내밀었다. 그날 밤 화장실을 그렇게 많이 다닌 것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후에 알고 보니 아주머니가 빵 부풀게 만드는 이스트 가루를 소화제로 착각하고 주신 것이었다. 그렇게 내 첫 가정방문은 첫 경험이 아주 많았던 기억에 남는 행사였다. 

그 일이 있고 난 다음해 난 안성에 가정을 꾸렸고 내 사랑하는 두 아이들이 태어났다. 지금은 수원에서 살고 있지만 여러 인연으로 안성을 자주 간다. 특히 모내기 철 논물 가득한 논둑길을 볼 때마다 자전거와 함께 논에 빠졌던 추억이 오버랩 되어 감회가 새롭다. 

[사진=윤원 시인/사진작가]
[사진=윤원 시인/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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