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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경희 경기도의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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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경희 경기도의회 부의장
  • 대담=김인종 편집위원장/ 글·사진=김동초 대기자
  • 승인 2021.01.11 1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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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통해 주민들의 삶이 조금 더 나아졌으면…”
문경희 경기도의회 부의장이 경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진지하게 답변하고 있다.
문경희 경기도의회 부의장이 경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진지하게 답변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시작해서 코로나19로 끝난 기해년(己亥年)이 아픔 속에 저물고 ‘하얀 소’의 해인 2021년 신축년(辛丑年)이 밝았다. 신축년 새해에 경인경제 본지가 제일 먼저 컨택 했던 인터뷰 인물인 문경희 경기도의회 부의장을 만나러 의회를 방문했을 때는 정오의 해가 약간 기울어가는 오후 2시경 무렵이었다.

경기도의회 부의장실을 방문하니 신사임당 같은 정갈한 모습의 여성의원이 격조 있게 세련된 복장을 갖춘 채 반갑게 환한 미소로 취재진을 맞이했다. 

낮 기온은 며칠째 영하의 날씨를 기록하는 가운데 아늑한 부의장실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차를 사이에 두고 자리를 잡았다. 먼저 인터뷰용 사진을 찍기 위해 여러 포즈를 부탁하면서 절도있는 몸가짐이 느껴졌다. 표정은 밝았지만 그렇다고 가볍지 않고, 포즈는 자연스러웠지만 살짝 ‘각(角)’이 잡힌 느낌이었다.

원활하게 촬영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 다시 통 성명과 함께 이름의 사연을 살짝 들어보았다.

문경희 부의장의 이름 중 ‘해 높을 경’자에 대한 한문이 흔히 여성들이 쓰는 ‘경’자가 아닌 점에 주목을 했다. ‘해 높을 경’으로 이름한자를 찾는데 반나절의 시간이 걸렸을 정도로 특별한 한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렇게 이름 중 특별한 한자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필자의 이름도 옥편에도 없었던 한자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선생님들이 애를 먹어서 ‘수기(手記)’로 적었던 한자라 동질감을 느꼈다.

아무튼 여성들에게 쓰기 힘든 한자인 ‘해 높을 경’을 이름에 지어 주셨던 선친의 탁월한 ‘선견지명(先見之明)’과 독특함이 오늘 날, 문경희란 남양주시 최초의 여성 도의원 탄생과 1,370만 ‘초거대’ 광역단체 경기도의회 부의장에 임명될 수 있었던 밑바탕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역시 문경희 부의장은 이름 한자에서도 범상치 않았음을 느꼈지만 이력 또한 예사롭지 않았음을 인터뷰를 진행하며 깨닫기 시작했다. 흥미진진한 인터뷰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들만이 갖을 수 있는 섬세함과 거기에 결단력과 파워가 겸비되면 유능한 인물들이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는 참으로 신선하고 의미 있는 만남이었다.

1시간 반의 짧지 않은 시간이 언제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순간적인 느낌이었고 시간이 모자라는 아쉬움을 진하게 절감한 진솔한 인터뷰였다.

 

여군 학사장교 출신,
3선남양주시 최초 여성 도의원
경기도의회 부의장에 올라

문, 부의장님의 성장기와 사연들이 있다면?

-저는 1965년 부산의 만덕동에서 4녀 1남 중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평범한 중류가정이었지만 아버님이 초등학교 입학 전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머님이 여성 혼자 힘으로 저희들을 키우며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어린 시절 부산 주례동에 있던 ‘주례’초등학교를 나와 ‘가야’여중과 서면에 있던 ‘혜화’여고를 나왔습니다. 옛날 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정윤희, 유지인, 장미희) 중 제일 청순했던 정윤희씨의 모교이기도 합니다. 대학 진학은 부산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어머님의 고생과 희생에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삶에 임했던 시절이라고 생각됩니다.

문, 대학 졸업 후 일반여대생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여군 학사장교의 길을 택하셨다고 하는데?

-물론 여학생으로서는 좀 특이한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여자도 남자처럼 국방의 한 가운데 설 수도 있고 또 사회적 통념인 여자라는 한계를 뛰어넘고 싶은 도전정신도 작용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정적인 것은 대학선배가 군인의 길을 걸었던 모습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62:1의 경쟁률을 뚫고 육군 여군학사장교에 합격, 용산에 육군 여군훈련소를 거쳐 정보사 정보장교로 복무를 하게 되었고 3년 5개월 동안의 명예스런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날 약간은 자연스럽게 몸에 밴 절도가 오랜 군 장교생활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문, 군 전역 후 본격적으로 생활전선에 뛰어드셨다면?

-저는 군에서 복무를 하던 시절에 국방부 내 복지시설인 육군회관에서 여군 동기들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식을 했습니다. 경직된 군대문화가 타성으로 젖기 전에 남편의 권유로 군 생활을 마감했고 남편이 운영하던 연세대학교 앞 카페 ‘사람사는 세상’이 있었던 신촌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었습니다. 
카페 ‘사람사는 세상’은 노무현 대통령이 즐겨 쓰셨던 구호지만 저희가 원조라고 생각합니다.

문, 사회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고 생각되는데?

-98년도는 IMF시절이라 모두가 어려웠습니다. 서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으로 광명, 일산 등으로 이사를 했고 마지막으로 ‘남양주’에 터를 잡게 되었습니다. 당시 남양주는 수도권의 외곽 변두리로서 36평 아파트의 전세가가 3천 만 원정도 밖에 안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시절 일반인들의 인식에 ‘남양주’市는 서울에서 춘천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던 도·농(道·農)복합도시 정도였습니다.

그 곳에서 남편은 요식업과 세탁 공장 등의 사업을 이어갔고 저는 공부방, 과외지도 등으로 경제일선에서 함께 맞벌이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생활전선에서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문, 당시 부산 출신으로 남양주라는 낯선 도시에서 적응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었다면?

-공부방 등 생업전선에서 지역사회활동을 하며 열심히 뛰었지만 그와 못지않게 신앙생활에도 충실하게 임했습니다. 저는 남양주시 천주교 성당공동체에서 꾸준한 봉사활동을 통해 창현성당 총구역장(12개 구역)이 됐고 그로 인해 지역사회 다방면에 인프라가 깊고 넓게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신앙생활과 생업활동 그리고 종교를 통한 활발한 봉사활동이 탄탄한 인적 네트웍을 형성하게 되면서 차차 지역사회 생활에 슬기롭게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습니다.

문, 정치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계기가 있으시다면?

-남편이 전부터 해오던 ‘노사모’ 활동으로 조우를 할 수 있었지만 정치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된 상태였습니다. 진정어린 남편과 주위의 권유로 마음이 움직였고 군 간부생활을 한 뚝심으로 한 번 도전을 해보고자 하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깊은 생각과 고민에 빠져 망설였지만 당시 시장 후보, 남양주 시의원 등 적극적인 권유와 최재성 국회의원의 추천으로 2010년 8대 지방선거 道의원 후보로 출마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당론에 따라 30%의 여성후보공천 몫이 있었던 시기였고 후보를 수락한 후에는 사력을 다해 선거에 임했습니다.

당시 선거는 매우 열세인 상황에서 시작했지만 선거캠프에서 국민참여당 후보와 후보단일화를 이끌어냈고 새벽 5시부터 밤늦게까지 선거현장에서 흘린 땀방울들이 결실이 되어 1800여표라는 적지 않은 표차이로 남양주시 최초의 여성道의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암튼 인생은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면 하늘도 돕는다는 생각이 실감이 났습니다.
정치성향이나 ‘정당(政黨)’을 떠나 카톨릭 종교를 바탕으로 진실한 인간의 진심과 노력이 빚어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원동력들이 여성 3선 도의원 출신의 경기도의회 부의장, ‘인간(人間)’ 문경희를 있을 수 있게 했다고 여겨집니다.

문, 부의장님만의 의정철학과 보람 있었던 의정활동이라면?

-의정활동은 크게 ‘의회활동’과 ‘지역활동’ 2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적절하게 조율하는 것이 바람직한 의정활동을 할 수 있는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의원은 자신을 선택해준 지역주민을 비롯 넓게는 경기도민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포용력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의정철학은 “정치를 통해 삶이 조금 더 나아졌다”고 주민들이 느끼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바로 생활정치의 하나인 교복은행 제도의 실행이었습니다. 교복은행은 헌 교복을 깨끗하게 세탁하여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제도입니다. 현장에서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 생활정치실현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의정활동이라면 2010년 초선 당시 ‘경기도 학교용지분담금’에 대한 문제 해결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당시 경기도의 누적 학교용지분담금이 1조 3천억 원에 달했지만 10년 분할의 MOU를 체결로 해결의 물꼬를 텄고 잘 마무리가 됐습니다. 무엇보다 지방자치와 지방교육자치 간의 원활한 협정을 이끌어 내었다는 것에 가장 큰 의미가 있으며 학교용지분담금에 해결 결과로 학교가 필요했던 우리시 남양주에 2014년 ‘천마중학교’를 신설할 수 있도록 한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문, 코로나19로 힘든 경기도민과 지역주민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무엇보다 코로나 극복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세가 좀처럼 꺽이지 않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소규모 감염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위기 상황입니다.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고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방역 수칙을 준수하는 것만이 이 위기를 이겨낼 것입니다. 무엇보다 공공의료의 중요성이 부각된 사태입니다. 맞춤형 공공의료 정책을 마련하고 지역의 건강문제를 모니터링을 통해 발굴하고 관련된 유관기관들을 연계 협력되도록 경기도의회와 경기도가 앞장 설 것입니다. 저 또한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의 한사람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지역현안인 교통망 확충과 탄탄한 도로 인프라를 반드시 구축하겠습니다.
남양주 지역주민 여러분도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 앞장서 이 난관과 위기를 극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힘내시길 바랍니다.

문, 부의장님의 가정사와 좌우명이 있으시다면? 

-저는 인생의 최고 동반자인 남편과의 사이에 딸과 아들을 하나씩 두었습니다. 모두 건강하고 반듯하게 자라주어 너무 고맙습니다.
그리고 제 ‘좌우명’이라면 “매 순간 최선을 다하자”입니다. 인간은 후회 없는 삶을 살기는 어렵지만 후회 없이 살려고 노력은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반드시 힘을 내시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상초유의 이 위기를 우리 모두 함께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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