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수필] 입속에 사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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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 입속에 사는 집
  • 정정임 수필가
  • 승인 2020.11.13 1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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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정임 수필가.

편안한 집이 좋다. 마당 넓은 집에 텃밭을 가꾸며 장미 넝쿨 드리우고 산새소리 들리는 그런 집을 꿈꾼다. 하지만 무엇보다 비와도 끄떡없고 천둥이 쳐도 무너지지 않는 튼튼하고 안전한 집에 살고 싶다. 며칠 전 시간을 내서 치과에 다녀왔다. 평화롭게 보이기만 했던 내 입안이 낱낱이 공개되는 순간이다.

내 입 속에는 여러 채의 집이 있다. 위아래 나란히 마주 보고 있는 집은 노후 되서 허물어져 가는 집도 있고 재건축을 해서 금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집도 있다. 터가 넓은 집엔 관리 소홀한 틈을 타서 불법 체류자들이 서식한다. 허락도 없이 쳐들어온 그들은 야금야금 집을 파먹는다.

그리고 하얀 집을 검은색으로 바꿔놓기 일쑤여서 향기 나던 마을은 악취가 진동했다. 남의 집에 세를 내고는 못 살망정 집은 함부로 부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임시방편 불소치약으로 쓸어 내보지만 헛수고일 뿐, 대지가 흔들리고 집이 위태로워 보여 치과에 갔다. 안전진단 결과 재건축이 시급하다며 시공사 측에서 바로 공사를 추진해 버렸다.

의자가 젖혀지고 빨간 불빛 위에 푸줏간에 놓인 고기처럼 입 벌리고 누웠다.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은 도구를 든 사람들뿐이다. 하얀 가운 입은 의사가 마취주사를 놓고 간다. 얼얼하면서도 턱 근육까지 마취된 것처럼 감각을 잃어갈 때 재빨리 연장을 들고 오는 간호사, 낡은 집을 허물고 재건축이 한창인 입안에는 온통 무서운 도구들 소리가 들려온다.

드릴, 못, 나사, 망치 하품하듯 입을 크게 벌리게 한 다음 초록색 천막을 치니 침 삼킴조차 어려웠다.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삼키던 침 한 방울의 소중함을 새삼 간절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공사 중 먼지 방지를 위해 중간 중간 쏴대는 물 분사 위력에 바위만 한 돌덩이가 가끔 목구멍을 타고 쓸려 내려가는 느낌이 들기도 하다. 좀 더 세밀한 공사를 위해 입과 콧구멍만 뚫린 천으로 얼굴을 가린 다음 기초공사를 위해 땅을 파고 철근이 들어와 기둥을 세우고 용접을 하고 미장까지 마치고 왔다.

 

화가 김지연 / Zinna kim '붉은 자작나무 숲'.
화가 김지연 / Zinna kim '붉은 자작나무 숲'.

탄탄하던 집은 조립식으로 바뀐 듯 허술하기 짝이 없다. 딱딱한 거 함부로 씹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공사는 다음 주로 또 미뤄졌다. 입안을 헹궈내며 바짝 늙어버린 내 모습과 마주 선다. 산부인과 다음 치과 정말 싫어하며 묻지도 않은 질문에 절로 고개를 내두른다. 살기 위한 사투는 죽을 만큼 힘겹다. 손에 꽉 쥔 땀 한주먹과 후들거리는 다리로 걸어 나오며 잠시 생각해본다. 속이 병들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아무리 기름칠한 걸레질을 한들 겉모습만 반들거릴 뿐 무너지고 만다는 것을... 여러 차례 혹독한 공사를 마친 다음 번듯한 집이 생겼다.

사람에게 있어 이 튼튼한 것이 오복 중에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므로 잘 씹고 잘 소화시켜야 건강한 몸을 가꿀 수 있다. 건강한 몸이 건강한 정신을 만들어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 이제 반짝반짝 빛나게 리모델링도 했으니 가까운 친구들이라도 불러 집들이라도 해야겠다. 힘든 하루하루 잘 견뎌낸 내 이에 보상하듯 소갈비 살살 녹여서 막 뜯어먹으며 김~치 치~즈 요런 짓 하면서 하얀 이 드러내며 활짝 웃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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