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연수 한국사진작가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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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연수 한국사진작가협회 이사
  • 대담: 김인종 편집위원장 / 글, 사진: 김동초 대기자
  • 승인 2020.10.2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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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수 한국사진작가협회 수원지부장이 경인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연수 한국사진작가협회 수원지부장이 경인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첫 인상이 깔끔하다. 주로 사진이나 예술 방면의 인물들은 머리도 길고 모자를 쓰기도 한다.

또는 사진을 찍는 복장은 그에 따른 악세사리들이 많은 관계로 주머니가 다수 부착된 조끼를 많이 착용한다. 하지만 정연수 한국사진작가협회 수원지부장은 잘 정제된 모습의 대기업 임원타입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상상과는 다른 모습에 살짝은 어색했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한 분야에 50년 가까이 프로가 걸어온 길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연수 한국사진작가협회 수원지부장은 수원토박이라고 했다. 탄생지인 본적을 정확히 알고 있다. 매산로 3111번지라고 했다. 주로 수원이 고향인 사람들은 수원에 대한 애착이 강한 느낌이 든다.

 

1955년 생으로 5형제 중 3째로 태어났다고 하니 다수의 자손 중 거의 중간에 태어난 인물들은 좀 자유분방하거나 반항적인 인물이 많다. 장남의 책임감이나 막내의 어리광이 아닌 중간위치에서 무언가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는데 골몰하는 타입 들이다. 그래서 보편적으로 유명한 작가나 예술가들 중 둘째 셋째가 많다고 한다.

 

인터뷰를 전문으로 하는 직업 상 화가나 문인 음악가나 더러는 스포츠계 관련인물들을 심심찮게 만나왔다. 하지만 사진을 접하는 쪽의 대가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수 배운다는 자세와 기대감으로 나름 꽤 흥미로운 인터뷰가 시작됐다.


 

- 6·25후의 전반적인 사회 환경이 열악할 때인데 사진과 인연이 된 계기는?

저는 55년 태어난 전쟁 후 세대로 수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보릿고개를 넘는 시기였다고 생각됩니다.

세류초를 나와 중학교 1학년 때 문경에서 탄광을 운영하시던 이모부가 페추리란 카메라를 생일선물로 주셨습니다. 그게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카메라를 접하게 된 시기였고 모든 게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학교행사나 소풍, 그리고 친구들과 놀러가게 되면 제가 주로 사진을 찍었고 그런 취미가 삼일고등학교까지 이어졌습니다.

고교를 졸업하고 나름 사진에 매혹을 느껴 당시 또래나 동기들 보다 좀 더 깊게 사진세계에 매료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럽게 78년도에 선배가 운영하던 영복사진관에서 2년 정도 사진에 푹 빠져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며 더욱 사진세계에 몰입하기 시작했습니다.

 

- 지부장님께서 활발하게 사진 활동을 하게 된 시기라면?

영복사진관에서 사진에 몰두하며 당시로서는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사진 세계로 들어왔지만 생계를 잇기 위한 경제활동이 절실했습니다. 당시 저는 그런대로 글씨쓰기에 소질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글씨체가 보기 좋았던 관계로 80년도 우리나라에서 화장품업계에서 커다란 주목을 받기 시작한 태평양화학 인사과에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주 업무는 인사과에서 회사서류나 문서, 상장·연설문 작성 등이 주된 업무였습니다. 이때 사내에 사진동아리인 사우회를 창설해 지도위원으로 적극적으로 사진 활동을 펼쳐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회사에서도 화장품회사이미지와 사진이 잘 어울린다는 판단 하에 적극적인 후원을 해주었습니다. 야외 촬영이나 야간 촬영 등의 프로그램행사를 진행 할 시 모든 경비와 물자를 지원해주었습니다. 심지어 미모가 빼어난 여직원들을 몇 명 엄선해 모델로 파견하는 파격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행사가 끝나면 작품들을 슬라이드로 제작, 오버헤드프로젝트로 회원들과 회사관계자들과 심사를 해 수상을 하기도 하며 사진에 대한 전문기술 습득과 작품들을 창출해냈습니다. 이렇게 7~8년 동안 지도위원을 맡다가 후임에게 물려주었습니다.

 

  • 사진작업을 시작하게 된 시기는?

저는 80년부터 96까지 17년 간 태평양화학에서 근무를 하고 퇴직을 했습니다. 다시 생업을 위해 직장이 필요했기에 인계동 갤러리아 백화점 뒤에 있었던 나들이 뷔폐에서 직업적인 사진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태평양화학에서는 본 업무가 인사로 시작했고 사진은 동우회활동이었지만 이젠 사진을 찍는 댓가로 돈을 벌기 시작한 것입니다. 비로소 경제활동의 주 작업이 사진이 된 것입니다. 취미와 직업은 많은 차이가 있다고 그때 느꼈습니다. 많이 신중해졌고 절실하게 직업에 임했습니다.

뷔폐란 업종의 성격 상 주로 고객이 약혼을 비롯한 환갑이나 회갑잔치, 그리고 돌잔치 등 가족행사가 많았고 그 행사들에서 사진과 비디오 촬영을 주로 했습니다. 당시 모든 행사는 기본적으로 촬영이 필수였고 그런 관계로 꽤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 생계가 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취미는 주로 자기만족이면 됩니다. 하지만 사진은 고객만족이 우선이고 절대적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한 번 쯤은 마찰이나 사고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언젠가 회갑잔치를 찍은 적이 있는데 필름 상 한쪽이 하얗게 나와 고객의 항의로 법정 소송까지 가며 엄청난 시련을 겪었습니다. 결국 서울의 전문적인 사진슬라이드 업체에서 필름을 복원해 마무리가 되었지만 지금까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교훈이 되었습니다.

 

- 자신만의 본격적인 사진작업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는지요?

2002년 경 나드리뷔폐를 퇴사한 후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는 태평양화학 근무 시도 틈틈이 카렌다사진을 찍어 R3, 타임스페이스, 토픽 등 전문 슬라이드업체에 대여를 해왔습니다. 풍경과 야생화 등 주로 자연물을 주 대상으로 촬영을 해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진 분야에서 지도자생활을 하며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2002년경에는 카톨릭 모임의 사진 동호회인 빛과 소금에서 사진지도를 했습니다. 또한 수원시 사진가 모임인 볕모임에 가입 활발하게 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볕모임은 결성 된지 벌써 50년이 되었고 지금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진 계에 들어 온지 18년 만인 96년에 드디어 수원시 사진작가협회에 가입을 했습니다. 그때가 태평양화학을 퇴사 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이미 수원시의 많은 사진관계자들과 활발한 교류가 있었기에 수원시 사진협회 가입과 동시에 사무국장직을 맡아 많은 분야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 하신 활동들이라면?

수원시 사진가협회 사무국장 세계8개국(미국·일본·중국·인도·이라크 등)과 국제사진교류전을 이어오다 축소되며 얼마 전 까지 동북아 사진전으로 중국(지난)과 일본(홋카이도 아사히가와)와 교류 사진전을 진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중국과는 지난 2017싸드배치문제로 교류가 끊겼고 일본과는 위안부사과문제로 20년 가까이 이어지던 행사교류가 중단되었습니다.

민간 문화·예술차원의 교류마저 정치적 이해관계로 끊기게 되어 매우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어서 빨리 외교적인 해법을 찾아 사진을 포함한 문화·예술관계자들의 활발한 민간교류가 이어졌으면 합니다.

현재 수원시는 세계 17개국(러시아·독일·루마니아·캄보디아) 20개 도시 중, 1년에 2~3개국과 돌아가면서 국제사진교류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수원시 사진협회의 상황과 지부장님의 바램은?

수원시에는 등록된 사진작가 협회회원들만 해도 180명이나 됩니다. 제가 입회시킨 정식회원만 수원이 79명이고 경기도는 111명입니다.

그 많은 회원들에게 제가 사진가협회 회원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눈높이를 낮출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사진가들의 자부심은 기본입니다. 하지만 자부심만큼 사회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사진 활동과 그로 인해 발생되는 수익금 등을 모아 사회에 봉사하는 폭을 넓히고 함께 성장하며 더불어 사는 사회의 중심축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좀 더 충실한 자기만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피사체(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수조건이 많은 독서와 자료탐구가 절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폭넓은 지식과 대상에 대한 이해가 완성된 사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야외 찰영 등 활동이나 운신의 폭이 제한된 코로나19사태 속에서 많은 식견과 지식을 쌓으며 재충전의 기회로 삼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20181월에 한국사진가협회 수원지부장을 맡아 올해 말에 임기가 끝납니다. 그때까지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 생각하시는 사진이란?

사진이란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속에는 그 사람의 주관과 뿐만 아니라 사물의 혼과 정서가 깃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人生이라고 생각합니다. 워낙 오랫동안 사진세계 속에서 살다보니 사진으로 인생을 보게 되고 사진으로 인생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진 차체는 인생과 매우 밀접하고 바로 그 자체가 인생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좌우명이 있으시다면?

저보다 한 살 적은 56년생인 제 아내와 딸(37)과 아들(35)이 각각 하나 씩 있습니다. 아내는 어머님의 육촌오빠가 장인어른과 친구였던 관계로 중매를 통해 만났습니다. 당시 둘 다 꽉 찬 적령기였기에 선을 본지 6개월 만인 835월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저는 태평양화학 근무 당시에도 베스트드레서에 줄 곳 뽑힐 만큼 멋쟁이란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름답고 착한 아내에게 저도 한 눈에 반했었기에 바로 결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두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줬고 제가 힘든 사진가의 길에서 방황할 때 저를 묵묵히 뒷 바라지를 한 아내는 제겐 너무 과분한 사람입니다.

 

현재 큰 딸은 음악을 전공해 초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고 있고 아들은 축제 등 행사에서 불꽃축제부분을 담당하는 전문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코로나사태로 힘이 들지만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이 위기를 잘 견뎌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굳이 제 좌우명이라고 한다면 약간은 손해 보듯이 살자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면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회가 윤택해지고 더불어 사는 삶이 실천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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